과거시험장에서 압사 사고로 죽은 유생들: 1887년, '난장판'이 된 과거장의 비극
부제: 붉은 답안지(시권)를 쥐고 짓밟힌 선비들, 조선 인재 선발 제도의 종말
기본 정보: 《고종실록》 24년(1887) 3월 13일 / 사건 ID: IR-0020
1. [과거장 문이 열리던 새벽, 아수라장이 된 등과문(登科門)]
1887년(고종 24) 3월 13일 이른 새벽, 한양 창경궁 과거 시험장 앞.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대궐 문 앞에는 봇짐과 지필묵을 든 수만 명의 유생과 대리 시험꾼(거벽·사수), 시중을 드는 하인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운집해 있었다. "문이 열린다! 들어가자!" 과거장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순간, 좁은 통로를 향해 수천 명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시험관에게 답안지를 먼저 제출해야 급제할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앞서가던 유생이 넘어지자 뒤따르던 수백 명이 그 위로 겹겹이 엎어졌다. "살려달라!", "사람이 밟힌다!" 비명과 절규가 새벽하늘을 찢었지만, 뒤에서는 통제 불능의 군중이 멈추지 않고 밀고 들어왔다. 유교 국가 조선에서 가장 엄숙해야 할 과거 시험장이 삽시간에 피와 먼지로 얼룩진 생지옥으로 변했다.
2. [실록에 기록된 과거장의 참사: "짓밟혀 죽은 자가 속출하다"]
날이 밝아오자 참혹한 광경이 드러났다. 짓밟혀 숨이 끊어진 유생들의 시신이 거적에 덮여 실려 나갔고, 팔다리가 부러져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부상자가 수십 명에 달했다. 《고종실록》의 기록관은 과거 시험장에서 벌어진 이 믿을 수 없는 압사 참사를 침통하게 기록했다. *"과거장에서 문을 열 때 유생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밀치고 들어가다가 넘어져 밟혀 죽은 자가 여럿이었고, 부상당한 자가 속출하여 시험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 《고종실록》 권24, 고종 24년 3월 13일 기사 맥락* 고종은 압사 사고 소식에 경악하여 즉시 시험을 중단시키고, 사망한 유생들에게 장례비와 구휼금을 지급하도록 명하는 한편, 시험장 질서를 문란하게 한 시관과 경비 책임자들을 파직하여 의금부에 가두도록 했다.
3. [매관매직과 선착순 채점: 타락한 과거 제도가 낳은 괴물]
어떻게 배운 사대부 유생들이 목숨을 걸고 남을 짓밟는 야만의 난투극을 벌였을까? 조선 말기 과거 제도는 이미 인재 선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민씨 척신들의 세도정치 아래서 과거 급제 자리는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이 되었고, 시험장에서는 돈 많은 양반 자제를 대신해 시험을 쳐주는 전문 대리단(거벽과 사수)이 판을 쳤다. 더욱이 시관들은 수만 장의 답안지를 다 읽지도 않고 '먼저 제출된 답안지 몇 장'만 대충 훑어보고 급제자를 정하는 '선착순 채점'의 악습을 저질렀다. 결국 글재주가 아니라 '과거장 문을 부수고 먼저 뛰어 들어가는 완력'이 급제의 필수 조건이 되어버렸고, 이 혼란스러운 난투극에서 오늘날의 속어인 '난장판(亂場板)'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4. [기록이 남긴 통찰: 500년 왕조를 지탱한 사다리의 붕괴]
고종 24년의 과거장 압사 참사는 과거 제도의 도덕적 정당성이 완전히 사망했음을 선언한 사건이었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 붉은 답안지를 손에 꼭 쥐고 흙바닥에서 짓밟혀 죽어간 젊은 선비들의 시신은, 국가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부패했을 때 그 사회의 청년들이 치러야 하는 가장 비참한 대가를 웅변했다. 결국 이 참극이 일어난 지 7년 뒤인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500년 조선을 지탱했던 과거 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폐지되었다. [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
1. [사료 원문 및 출처]
- 출전: 《고종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범승천체도위덕융공지신희문헌무경헌순효태황제실록(高宗實錄)》 권24, 고종 24년 3월 13일 기사 맥락**
- 원문 맥락: "科場開門之際, 儒生等爭先擁擠, 輾轉踐踏, 致有壓死者數人, 傷者甚衆。 上命賑恤死者, 鞫治禁衛官。"
- 국역문 맥락: "과거장 문을 열 때에 유생들이 앞을 다투어 밀치다가 서로 밟혀 압사한 자가 수 명에 이르고 부상자가 매우 많았다. 상이 명하여 사망자를 진휼하고 금위관을 국문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
2. [용어 및 제도 해설]
- 난장판(亂장板):** 조선 말기 과거 시험장의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가리키던 '난장(亂場)'에서 유래한 말로, 극도로 어지러운 상태를 뜻하는 관용구.
- 거벽(巨擘)과 사수(寫手): 조선 후기 과거 부정행위의 전문 분업 조직. 글을 대신 지어주는 실력자를 거벽, 명필로 글씨를 깨끗이 베껴 써주는 자를 사수라 불렀다.
- 선착순 채점(先到順 採點)의 폐단: 수만 명의 응시자가 몰리자 시험관들이 먼저 들어온 답안지만 채점하고 마감해 버려, 답안지 제출을 위한 유혈 몸싸움이 벌어졌다.#### **
3. [인물 및 역사적 배경]
- 조선 말기 과거제의 문란(1880년대):** 개항 이후 국가 재정난과 민씨 척신 정권의 매관매직이 극에 달해, 백일장과 과거가 남설(濫設)되고 합격증이 공공연히 매매되었다.
- 1894년 과거제 폐지: 갑오개혁 당시 신분제 철폐와 함께 과거제가 공식 폐지되고 근대적 관리 등용 제도가 도입되었다.#### **
4. [교차 사료 및 관련 연구]
-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 구한말 과거장의 참상과 뇌물 수수, 대리 시험의 구체적 사례 수록.
- 사회제도사 연구: 조선 말기 과거장 압사 사건을 '전근대 능력주의 선발 제도의 파탄과 근대적 관료 선발 체제로의 이행 필연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