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농부
가난한 마을에 소 한 마리 가질 돈이 없는 초라한 ‘작은 농부(Bürle)’가 살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목수에게 나무로 진짜 송아지와 똑같이 생긴 가짜 나무 송아지를 깎아달라고 부탁하여, 마을 목동에게 맡기며 풀을 뜯겨달라고 했습니다. 목동이 방치하여 송아지가 사라지자, 작은 농부는 영주에게 소송을 걸어 목동에게서 진짜 암소 한 마리를 배상받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소가 죽고 말았습니다. 농부는 소의 가죽을 벗겨 소금에 절인 뒤, 가죽을 팔기 위해 대도시로 떠났습니다.
까마귀 점쟁이와 사제의 간통 현장 갈취
날이 저물어 어느 방앗간 주인의 집에 하룻밤 묵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외양간 짚더미 속으로 숨어든 작은 농부는, 방앗간 주인이 외출한 사이 여주인이 마을 사제(Parson)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구운 고기와 와인으로 밀회를 즐기는 간통 현장을 엿보았습니다.
갑자기 남편 방앗간 주인이 돌아오자, 사제는 벽장 속에 숨고 음식들은 오븐과 찬장에 숨겨졌습니다.
방앗간 주인이 농부를 방으로 들이자, 농부는 발밑에 놓아둔 소가죽 속에 든 까마귀를 발로 쿡쿡 찔렀습니다. 까마귀가 깍깍 소리를 내자 농부가 말했습니다.
“내 가죽 속에 든 점쟁이가 오븐 속에 로스트 치킨과 포도주가 숨겨져 있다고 예언하는군요.”
방앗간 주인은 감탄하며 음식을 꺼내 먹었고, 농부는 “벽장 속에 악마가 갇혀 있다”며 사제를 밖으로 쫓아내며 사제에게서 입막음조로 황금 삼백 탈러(Drei hundert Taler)를 갈취했습니다.
소가죽 사기와 부자 농부들의 자멸적 도살
막대한 황금을 쥐고 귀환한 작은 농부를 보고, 질투에 눈이 뒤집힌 마을의 부자 농부들이 비결을 물었습니다.
“도시의 가죽 시장에 갔더니 소가죽 한 장에 황금 삼백 탈러씩 쳐주더군요.”
탐욕에 눈이 먼 부자 농부들은 자신들의 모든 암소를 도살하여 가죽을 벗겨 도시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시장 상인들은 가죽 장수들을 미친놈 취급하며 몽둥이로 두들겨 패 쫓아냈습니다.
전 재산을 날린 부자 농부들은 작은 농부를 죽이기 위해 흉계를 꾸몄습니다.
자루 속의 시장(Burgomaster)과 양치기 바꿔치기
부자 농부들은 작은 농부를 볏짚 자루 속에 쑤셔 넣고 묶은 뒤, 깊고 거센 강물 속으로 집어던져 익사시키기 위해 강가로 끌고 갔습니다.
도중에 부자 농부들이 주막에 술을 마시러 들어간 사이, 자루 속에 갇힌 작은 농부는 지나가던 순진한 양치기를 보고 목청껏 외쳤습니다.
“나는 시장이 되기 싫다! 아무리 강요해도 나는 시장 직을 맡지 않겠다!(Ich tu's nicht! Ich will kein Bürgermeister werden!)”
양치기가 다가와 “시장이 되는 것이 그리 싫다면 내가 대신 자루 속으로 들어가겠다”며 자루를 풀어주었습니다.
작은 농부는 양치기를 자루 속에 대신 묶어두고, 양치기의 수백 마리 살진 양 떼를 이끌고 유유히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술을 마시고 돌아온 부자 농부들은 자루를 번쩍 들어 올려 깊고 소용돌이치는 강물 한가운데로 풍덩 던져 양치기를 수장 익사시켰습니다.
황금 양 떼의 거짓말과 부자 농부들의 집단 익사
마을로 돌아온 부자 농부들은, 죽은 줄 알았던 작은 농부가 눈부신 양 떼를 몰고 당당하게 마을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사색이 되었습니다.
“네놈이 어찌 물속에서 살어서 돌아왔단 말이냐?”
작은 농부가 태연하게 웃으며 거짓말을 늘어놓았습니다.
“강바닥 깊은 곳에 눈부신 수중 낙원이 있더군요. 물풀이 우거진 바닥에 수천만 마리의 황금 양 떼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그중 몇 마리만 건져서 올라온 것이라오.”
눈이 뒤집힌 부자 농부들은 강가로 달려갔습니다. 강물 위로 비친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을 ‘강바닥의 양 떼’로 착각한 촌장이 먼저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풍덩!
촌장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어서 들어오라!(Komm!)”고 헐떡이자, 다른 농부들은 “자신을 부른다”고 착각하여 온 마을의 부자 농부들이 일제히 거센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풍덩! 풍덩! 풍덩!
탐욕스러운 부자 농부들은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려 단 한 명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전원 처참하게 익사하여 물귀신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작은 농부는 마을의 모든 전답과 재산을 홀로 차지하고 영원한 부호로 군림했습니다.
📖 깊이 읽기: 심층 주석 및 문학·민속학적 해설
[주석 1] 트릭스터(Trickster/ATU 1535)와 봉건 계급의 사기극: 무력한 빈농이 지배층(사제, 부자 농부들)의 위선과 탐욕을 역이용하여 전멸시키는 구조는 중세 민중 문학에서 가장 통쾌한 사기극(Schwank)의 전형입니다.
[주석 2] 자루 바꿔치기(Substitute in the Sack)와 희생양: 양치기가 대신 물에 빠져 죽는 잔혹한 전개는 트릭스터 문학 특유의 도덕적 결벽증이 거세된 냉혹한 생존주의적 면모를 보여줍니다.
[주석 3] 집단 히스테리와 탐욕의 익사 자멸: 물속의 구름을 양 떼로 오인하여 집단 투신하는 결말은, 끝없는 물욕에 눈이 먼 지배층의 맹목성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가는 풍자극의 백미입니다.
스토리 요약 / 생각거리
가난한 작은 농부가 기지와 사기극으로 부패한 사제를 갈취하고, 자신을 죽이려던 탐욕스러운 부자 농부들을 강물 속으로 집단 투신하게 만들어 마을의 모든 부를 독차지하는 서늘하고 통쾌한 피카레스크(악한) 민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