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3일 일요일

울릉도에 침입한 일본 어민들을 체포해 추방한 사건: 1718년, 숙종의 수토관(搜討官)이 지켜낸 동해의 영토

제32회

울릉도에 침입한 일본 어민들을 체포해 추방한 사건: 1718년, 숙종의 수토관(搜討官)이 지켜낸 동해의 영토

부제: 안용복 담판 이후의 동해 바다, 불법 밀어선을 나포한 삼척첨사의 결단
기본 정보: 《숙종실록》 44년(1718) 4월 11일 / 사건 ID: IR-0032
1. [동해의 푸른 파도를 가른 판옥선, 절벽 뒤에 숨은 왜선]
1718년(숙종 44) 4월 11일, 거친 파도가 몰아치던 울릉도 도동 해안. 삼척첨사가 이끄는 조선 수군의 수토선(판옥선)이 깎아지른 해안 절벽을 돌아 섬 안쪽 포구로 진입하고 있었다.포구 깊숙한 자갈밭에 낯선 깃발을 단 일본 어선(왜선) 여러 척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배 주변에는 십여 명의 일본 어민들이 전복을 따고 해초와 목재를 베어내어 가마니에 싣느라 분주했다."조선의 영토에 침범한 왜인들을 낱낱이 포박하라!"수토관의 호령과 함께 조선 수군들이 활을 겨누고 돌진했다. 일본 어민들은 무기를 버리고 갯바위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고, 배에 가득 실려 있던 불법 채취물들이 현장에서 모조리 압수되었다.###
2. [실록에 기록된 울릉도 수토: "국경을 침범한 왜인을 나포하여 압송하다"]
이 사건은 1690년대 민간 외교관 안용복(安龍福)의 결사적인 도일(渡日) 담판으로 일본 에도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확약을 받아낸 이후, 조선 국가 권력이 정기적으로 영토 주권을 행사하던 현장이었다.《숙종실록》의 기록관은 수토관의 당당한 영토 순찰과 왜인 나포 소식을 기록했다.*"삼척포 수토관이 울릉도를 순찰할 때, 왜선이 몰래 들어와 어로를 행하는 것을 적발하여 그 무리를 체포하고 엄히 꾸짖은 뒤, 관례에 따라 왜인들을 압송하여 국경 밖으로 추방하였다." — 《숙종실록》 권61, 숙종 44년 4월 11일 기사 맥락*수토관은 왜인들에게 에도 막부의 도해 금지령을 상기시키며 영토 침범을 엄중히 문책한 뒤, 어선과 어민들을 대마도를 거쳐 일본 본토로 강제 송환했다.###
3. [안용복의 유산과 조선의 '수토제(搜討制)' 시스템]
어떻게 망망대해의 외딴섬 울릉도에서 정기적인 군사 순찰과 외국인 나포 작전이 가능했을까?숙종은 안용복 사건 직후, 동해 영토를 방치하면 일본의 침탈을 부를 수 있음을 직시했다. 이에 따라 강원도 삼척첨사와 월송만호에게 명하여 2~3년마다 수백 명의 군관과 포수를 태운 판옥선을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로 파견하는 정기 순찰 제도인 '수토제(搜討制)'를 국가 법제화했다.수토관들은 섬의 지형을 측량하여 지도를 그리고, 삼색 흙과 특산물을 수거해 왕에게 바쳤으며, 왜인의 불법 거주와 침입 흔적을 샅샅이 지워냈다.###
4. [기록이 남긴 통찰: 파도 위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주권]
숙종 44년의 왜인 추방 사건은, 조선이 결코 울릉도와 독도를 버려진 땅(공도)으로 방치하지 않고 국가 군사력으로 지켜낸 명백한 실효 지배의 영토였음을 증명한다.수토관들이 거친 풍랑을 뚫고 섬에 발을 디딜 때마다, 동해의 외딴섬들은 조선 왕조의 주권이 살아 숨 쉬는 국토의 최전선으로 굳건히 각인되었다.###
[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
1. [사료 원문 및 출처]
- 출전:** 《숙종현의광륜예성영열왕실록(肅宗實錄)》 권61, 숙종 44년 4월 11일 기사 맥락
원문 맥락: 搜討官巡歷鬱陵島, 獲潛泊捕採倭人, 嚴斥其犯越, 拘奪所採, 押送對馬島驅逐。
국역문 맥락: "수토관이 울릉도를 순력할 때 몰래 정박하여 고기잡이하던 왜인을 나포하여, 국경을 넘은 죄를 엄히 꾸짖고 채취한 것을 압수하며 대마도로 압송해 추방하였다."#### **
2. [용어 및 제도 해설]
- 수토제(搜討制):** 조선 후기 울릉도와 독도의 왜인 침입을 막고 영토를 관리하기 위해 삼척영과 월송포의 수군 지휘관을 2~3년마다 정기적으로 파견하던 군사 순찰 제도.
안용복 도일 사건(1693, 1696): 동래 출신 안용복이 일본 돗토리번과 에도 막부로부터 울릉도·독도 영유권을 인정받고 돌아온 사건(울릉도 쟁계).
삼척첨사(三陟僉使)와 월송만호: 강원도 동해안 해방(海防)을 책임지던 수군 절제사 및 만호로, 수토선의 총지휘관을 맡았다.#### **
3. [인물 및 역사적 배경]
- 숙종(1661~1720):** 백두산정계비(1712) 건립과 울릉도 수토제 확립을 통해 북방 및 동해 국경을 확정한 군주.
에도 막부의 죽도도해금지령(1696): 안용복의 항의 이후 일본 막부가 자국 어민의 울릉도(당시 일본명 다케시마) 도해를 공식 금지한 명령.#### **
4. [교차 사료 및 관련 연구]
-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여지고(輿地考):** "울릉과 우산(독도)은 모두 우산국 땅이며 우산은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松島)이다"라는 영토 기록 수록.
독도 영유권 연구: 17~18세기 조선 정부의 정기 수토 기록을 통해 국제법상 '국가의 계속적이고 평화적인 주권 행사'의 핵심 증거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