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3일 일요일

나주 객사에 나붙은 흉서와 '을해옥사'의 피바람: 1755년 영조의 정통성 트라우마

제34회

나주 객사에 나붙은 흉서와 '을해옥사'의 피바람: 1755년 영조의 정통성 트라우마

부제: 금성관 망화루에 걸린 붉은 벽서 한 장, 300여 명을 파멸로 몰고 간 피의 숙청
기본 정보: 《영조실록》 31년(1755) 2월 4일 / 사건 ID: IR-0034
1. [새벽안개 속 나주 객사, 기둥에 붙은 붉은 글씨]
1755년(영조 31) 2월 4일 새벽, 전라도 나주목의 중심 관청인 금성관 망화루. 객사 앞을 지나던 아전들의 눈에 기둥에 펄럭이는 흉흉한 종이 한 장이 들어왔다.
핏빛처럼 붉은 글씨로 쓰인 벽서(괘서, 掛書)였다. 그 내용은 읽는 이의 심장을 멎게 할 만큼 불온하고 과격했다.
"간신배들이 조정을 농락하고 충신들을 몰살하여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 뜻있는 자들은 모두 일어나 의병을 모아 거사하라!"
국왕 영조의 왕위 계승 정통성(신임사화와 경종 독살설)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정권을 뒤엎자는 노골적인 반역의 격문이었다. 나주 목사와 전라감사는 사색이 되어 벽서를 봉인하고 말 세 마리를 갈아타며 한양 대궐로 급보를 띄웠다.
2. [어전을 뒤흔든 괘서와 영조의 친국: "그 소굴을 낱낱이 파헤치라"]
장계를 받아 든 영조의 손이 분노와 공포로 떨렸다. 영조에게 '경종의 죽음'과 '숙종의 핏줄 논란'은 평생을 따라다닌 가장 치명적이고 발작적인 역린(逆鱗)이었다.
영조는 즉시 금부도사와 포졸 수백 명을 나주로 급파하여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다. 벽서를 붙인 주모자는 나주에 유배되어 살고 있던 소론 강경파의 거두 윤지(尹志, 이인좌의 난 당시 처형된 윤취상의 아들)였다. 윤지와 그 일당 30여 명이 쇠사슬에 묶여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영조실록》의 기록관은 온 나라를 전율케 한 '을해옥사(乙亥獄事)'의 서막을 기록했다.
"전라감사 조운규가 나주 객사의 괘서 사건을 치계하니, 상이 대경하여 친히 국문할 것을 명하고 역적의 무리를 일망타진하게 하였다."
— 《영조실록》 권83, 영조 31년 2월 4일 기사 맥락
영조는 창경궁 홍화문 앞에 친히 좌정하여 밤낮으로 혹독한 친국을 지휘했다. 윤지와 신천영 등 주모자들은 압슬형과 주리를 트는 모진 고문 끝에 능지처참되었다.
3. [토역정시(討逆庭試)의 폭발과 소론의 멸문지화]
그러나 피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반역 진압을 자축하기 위해 열린 특별 과거 시험(토역정시)에서, 응시생 심정연(沈鼎衍)이 영조와 노론을 통렬히 조롱하는 답안지(시권)를 제출하면서 옥사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영조는 이 사건의 배후에 거대한 소론의 역모 네트워크가 도사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조태구, 유봉휘 등 이미 사망한 소론 영수들의 관작이 추탈되고 무덤이 파헤쳐졌으며, 소론 계열 관료와 선비 200여 명이 처형당하고 300여 명이 유배되거나 노비로 전락했다. 탕평의 이름 아래 유지되던 정국의 균형추는 노론 일당 전제화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4. [기록이 남긴 통찰: 《천의소감》과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
옥사가 끝난 뒤 영조는 자신의 억울함과 정통성을 강변하는 책인 《천의소감(闡義昭鑑)》을 편찬하여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강제로 읽히며 충성을 맹세하게 했다.
그러나 책을 찍어낸 먹물로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정통성의 콤플렉스가 낳은 잔혹한 피비린내였다. 실록의 나주 괘서 사건은, 상처 입은 권력이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얼마나 가혹한 광기와 숙청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18세기 최대의 정치적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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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
1. [사료 원문 및 출처]
출전: 《영조장순지행순덕영모의열장의홍륜광인돈희체천건극성공신화대왕실록(英祖實錄)》 권83, 영조 31년 2월 4일 기축(己丑) 기사 맥락
원문 맥락:
> 全羅監司趙雲逵馳啓: "羅州客舍, 有掛書變恠之事。" 上震怒, 命逮問尹志等, 親臨鞫問。
국역문 맥락:
> "전라감사 조운규가 치계하기를 '나주 객사에 괘서의 변괴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하니, 상이 크게 노하여 윤지 등을 체포해 국문하게 하고 친히 국문에 임하였다."
2. [용어 및 제도 해설]
을해옥사(乙亥獄事, 1755): 나주 괘서 사건과 심정연 시권 사건으로 인해 소론 강경파가 사실상 몰살당하고 노론 벽파가 정국을 장악한 대규모 사화.
토역정시(討逆庭試): 역적(을해옥사 주모자)을 토벌한 것을 기념하여 대궐 뜰에서 치른 특별 과거 시험.
《천의소감(闡義昭鑑)》: 영조가 경종 독살설과 신임사화의 전말을 해명하고 노론 4대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55년 직접 찬술하여 반포한 국정 교재.
3. [인물 및 역사적 배경]
윤지(尹志): 소론 강경파 윤취상의 아들로, 1728년 무신란 이후 연좌되어 나주에서 20여 년간 유배 생활을 하다가 괘서를 주도했다.
사도세자의 비극과의 연관성: 을해옥사 이후 노론 척신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소론에 동정적이었던 사도세자와 영조 사이의 갈등이 극단화되어 1762년 임오화변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다.
4. [교차 사료 및 관련 연구]
《승정원일기》 영조 31년 친국 일지: 영조가 홍화문에서 죄인들을 직접 신문하며 눈물을 흘리고 격노했던 육성 기록 수록.
조선 정치사 연구: 나주 괘서 사건을 탕평책의 실질적 종말과 영조 후반기 노론 일당 독재 체제의 확립을 알리는 결정적 사건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