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4일 월요일

제45회 궁녀 가마 타고 러시아공사관으로 피난한 국왕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의 통한과 반격

제45회

궁녀 가마 타고 러시아공사관으로 피난한 국왕: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의 통한과 반격

부제: 칠흑 같은 새벽 신무문을 빠져나간 여교(女轎), 감금된 군주의 목숨을 건 탈출
기본 정보: 《고종실록》 33년(1896) 2월 11일 / 사건 ID: IR-0045
1. [얼어붙은 경복궁의 새벽, 신무문을 나선 두 채의 궁녀 가마]
1896년(고종 33) 2월 11일 새벽 6시경, 영하의 혹한이 몰아치던 경복궁 북문 신무문(神武門). 궁녀들이 출입할 때 타는 평범한 덮개 가마(여교, 女轎) 두 채가 조용히 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문을 지키던 친일 수비대 군사들은 궁녀들의 새벽 외출로 여기고 무심코 가마를 통과시켰다.그러나 그 좁은 가마 안에는 여장을 하고 숨죽인 채 웅크리고 있던 일국의 국왕 고종(高宗)과 왕세자(순종)가 타고 있었다. 을미사변으로 왕비를 잃은 뒤 경복궁 건청궁에 감금되어, 친일 김홍집 내각과 일본군의 감시 속에 "언제 독살당할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로 연명하던 군주의 목숨을 건 탈출극이었다.###
2. [실록에 기록된 아관파천: "어가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하다"]
가마는 흙먼지를 날리며 정동 언덕길을 내달려 언덕 위의 붉은 벽돌 건물, 정동 러시아 제국 공사관(아관, 俄館) 정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러시아 수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가마에서 내린 고종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Karl Waeber)와 손탁(Antoinette Sontag), 친러파 이범진 등이 치밀하게 준비한 '아관파천(俄館播遷)'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고종실록》의 기록관은 나라의 운명을 바꾼 이날의 파천을 기록했다.*"임금과 왕세자가 어가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시니(이어, 移御), 조칙을 내려 김홍집, 유길준, 정병하, 어윤중 등 역적들을 체포하여 참형에 처하게 하였다." — 《고종실록》 권34, 고종 33년 2월 11일 기사 맥락*러시아 공사관에 도착하자마자 고종은 국왕의 대권을 회복하고, 을미사변을 방조하고 단발령을 강행했던 친일 내각 각료들에게 즉각 체포령을 내렸다.###
3. [광화문 저잣거리의 피비린내와 무너진 친일 내각]
국왕의 어명이 포고되자 한양 도성은 거대한 분노로 들끓었다. 총리대신 김홍집(金弘集)과 농상공부대신 정병하는 도망치지 않고 광화문 앞을 지나다 성난 군중과 순검들에게 붙잡혀 그 자리에서 타살되었다.시신은 저잣거리에 내팽개쳐져 돌팔매를 맞았고, 유길준과 조희연 등은 일본군 수비대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을 거쳐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이 세운 괴뢰 정권은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4. [기록이 남긴 통찰: 주권 실추의 그늘과 대한제국의 잉태]
**아관파천은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군주권을 되찾고 자주적 결단을 내린 정치적 승부수였으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러시아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압록강 산림 채벌권, 종성·경원 광산 채굴권 등 막대한 국가 이권이 러시아와 서구 열강의 손에 헐값으로 넘어갔다.그러나 1년간의 러시아 공사관 망명 생활을 마친 고종은 1897년 2월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하여, 마침내 황제 즉위식을 올리고 자주독립 국가인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하게 된다.실록에 박제된 1896년 아관파천의 새벽은, 외세의 잔혹한 침탈 속에서 궁녀 가마를 타고 도망쳐야 했던 약소국의 뼈아픈 수치이자, 그 굴욕을 딛고 제국의 깃발을 세우려 했던 조선 왕조 최후의 몸부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