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국협회 보부상들의 만민공동회 습격 난투극: 1898년, 종로를 피로 물들인 몽둥이 테러
부제: 가짜 벽서 한 장에 조작된 공화정 음모, 의회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은 수구파의 폭력
기본 정보: 《고종실록》 35년(1898) 10월 24일 / 사건 ID: IR-0047
1. [종로 종각 앞의 평화 집회, 들이닥친 수천 개의 몽둥이]
1898년(광무 2) 음력 10월 24일(양력 11월), 서울 종로통 종각 앞 광장. 독립협회 지도자들과 수만 명의 서울 시민, 상인, 백정, 학생들이 모여 연일 열띤 토론과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한국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대중 민주 집회인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였다. 그들은 외세의 이권 침탈을 규탄하고, 백성의 권리를 보장하며, 중추원을 의회로 개편하여 국민의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하라는 '헌의 6조(獻議六條)'를 외치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종로 골목길에서 붉은 완장을 차고 굵은 몽둥이와 쇠갈고리를 든 수천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고함을 지르며 난입했다.수구파 대신들의 사주를 받은 어용 단체 '황국협회(皇國協會)' 소속의 보부상(褓負商) 무리였다. 보부상들은 비무장 상태로 연설을 듣고 있던 시민과 학생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몽둥이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2. [실록에 기록된 종로의 유혈 대참극: "양측이 몽둥이를 들고 서로 싸우다"]
평화롭던 종로 광장은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시민들이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분노한 서울 시민들도 각목과 기왓장을 들고 맞서 싸우며 종로 한복판에서 대규모 유혈 난투극이 벌어졌다.《고종실록》의 기록관은 도성을 공포로 몰아넣은 이 참담한 충돌을 기록했다.*"독립협회와 황국협회의 무리 수천 명이 종로 저잣거리에서 몽둥이와 돌을 들고 서로 치고받아 다치거나 피를 흘리는 자가 속출하니, 도성의 상가가 문을 닫고 인심이 흉흉해졌다." — 《고종실록》 권38, 고종 35년 10월 24일 및 11월 기사 맥락*
3. [익명 벽서 조작과 공화정 모함의 음모]
어떻게 국가 관청이 주도하여 깡패 조직을 동원해 백성들을 폭행하는 초유의 테러가 일어났을까?만민공동회의 기세에 밀려 의회 설립을 약속했던 수구파 대신 조병식, 이기동, 홍종우 등은 기득권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비열한 공작을 꾸몄다. "독립협회가 고종 황제를 폐위하고 박정양을 대통령, 윤치호를 부통령으로 삼아 공화국(共和國)을 세우려 한다"는 '익명 벽서'를 대궐 기둥에 몰래 붙여 고종을 극도로 자극한 것이었다.격노한 고종은 독립협회 간부들을 투옥하고, 보부상 조직인 황국협회를 동원해 만민공동회를 무력으로 짓밟도록 묵인했던 것이다.
4. [기록이 남긴 통찰: 폭력으로 꺾어버린 의회 민주주의의 싹]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고종은 결국 군대(시위대)를 출동시켜 독립협회와 황국협회를 모두 강제 해산시켰다. 이로써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싹텄던 입헌군주제와 의회 민주주의의 꿈은 수구파의 모략과 황제의 전제 권력욕 앞에 처참하게 꺾이고 말았다.실록에 새겨진 1898년 종로의 피투성이 몽둥이 난투극은, 백성의 자주적 각성을 두려워한 낡은 권력이 폭력배를 동원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 했던 한국 근대 정치사의 가장 부끄럽고 비극적인 오점이다. [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