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4일 월요일

제53회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들이 왕릉의 제물을 훔쳐 먹은 일 1695년, 을해대기근과 무너진 금기

제53회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들이 왕릉의 제물을 훔쳐 먹은 일: 1695년, 을해대기근과 무너진 금기

부제: 능참의 제단을 덮친 굶주린 유민들, 대역죄의 칼날을 거둔 숙종의 구휼령
기본 정보: 《숙종실록》 21년(1695) 4월 17일 / 사건 ID: IR-0053
1. [춘궁기의 봄날, 왕릉의 숲에 모여든 앙상한 그림자들]
1695년(숙종 21) 4월 17일, 보릿고개(춘궁기)가 절정에 달한 경기도의 왕릉 숲. 소나무 숲길 사이로 거적때기를 걸치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유민 수십 명이 비틀거리며 능역(陵域)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해 조선은 전례 없는 대흉년인 '을해대기근(乙亥大飢饉)'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겨우내 풀뿌리와 소나무 껍질로 연명하던 백성들이 봄이 되자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고, 굶주림에 눈이 뒤집힌 기민(飢民)들에게는 더 이상 지킬 예법도 법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국왕과 왕실의 조상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신성한 공간, 왕릉의 '정자각(丁字閣)'이었다.
2. [실록에 기록된 왕릉의 난입: 제사 음식을 쥐고 삼킨 유민들]
마침 정자각 제단 위에는 왕실 제향(祭享)을 마치고 아직 물리지 않은 정갈한 제수(祭需)들이 차려져 있었다. 하얀 쌀밥과 기름진 고기, 떡과 과일이 제상 위에 수북했다.
순간, 굶주린 백성들이 고함을 지르며 정자각으로 난입했다. 능참을 지키던 참봉과 능군들이 몽둥이를 들고 막아섰으나, 굶어 죽기 직전의 수십 명 유민들은 제지선을 뚫고 제단 위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맨손으로 제사 밥과 고기를 쥐어뜯어 입속에 쑤셔 넣었고, 제기가 바닥에 나뒹굴며 부서졌다. 신성해야 할 왕릉이 순식간에 굶주린 자들의 처절한 생존 현장으로 변했다.
《숙종실록》의 기록관은 왕조의 근본을 뒤흔든 이 충격적인 왕릉 제물 절도 사건을 기록했다.
"기근이 극심하여 굶주린 백성들이 능묘(陵廟)의 제향을 지낸 제물을 다투어 훔쳐 먹었으니, 유사(관아)가 이를 다스리려 하자 임금이 명하여 죄를 묻지 말고 진휼하게 하였다."
— 《숙종실록》 권28, 숙종 21년 4월 17일 기사 맥락
3. [대역죄(大逆罪)의 국법과 굶주림 앞의 사법적 딜레마]
조선 국법인 《경국대전》과 《대명률》에 따르면, 왕릉을 침범하거나 제물을 훼손·절취하는 행위는 조상과 종묘사직을 능멸한 최고 등급의 범죄인 '십악(十惡)' 중 대불경(大不敬) 및 대역죄로, 주모자는 참형에 처해지고 일족이 연좌되는 중죄였다.
포도청과 형조의 관헌들은 "국가의 제례를 모독하고 왕릉을 유린한 자들을 엄히 국문하여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주청했다.
그러나 청년 국왕 숙종의 판단은 달랐다.
"백성이 굶어 죽어 목숨이 경각에 달렸기에 벌어진 일이다. 어찌 산목숨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법조문만 들이대어 베겠는가!"
숙종은 체포된 기민들을 처벌하는 대신 전원 방면하고, 왕릉 주변에 진휼소를 설치하여 굶주린 백성들에게 쌀죽을 배급하도록 하명했다.
4. [기록이 남긴 통찰: 법과 제도를 초월한 생명의 무게]
왕릉 제물 절도 사건은 유교 국가 조선의 가장 신성한 기둥이었던 '효(孝)'와 '조상 숭배'의 제례 시스템조차, 굶주린 민초들의 원초적인 식욕 앞에서는 무력하게 해체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숙종이 법의 칼날을 거두고 백성들에게 밥을 내어준 것은, 백성이 굶어 죽으면 왕실의 제사도 사직의 보존도 무의미하다는 유교 민본주의의 가장 숭고한 결단이었다.
실록에 박제된 1695년 왕릉 앞의 풍경은, 끔찍한 대기근의 절망 속에서도 법의 경직성을 넘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내려 했던 역사의 따뜻한 숨결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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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
1. [사료 원문 및 출처]
출전: 《숙종현의광륜예성영열왕실록(肅宗實錄)》 권28, 숙종 21년 4월 17일 정해(丁亥) 기사 맥락
원문 맥락: 飢民爭奪陵廟祭需, 有司請按法懲治。 上曰: "飢餓切身, 徒求生活, 豈忍罪之? 命勿問, 仍施賑恤。"
국역문 맥락: "굶주린 백성들이 능묘의 제수를 다투어 빼앗아 먹으니 유사가 법에 따라 징벌할 것을 청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굶주림이 몸에 절박하여 오직 살길을 찾은 것이니 어찌 차마 죄주겠는가?' 하고, 명하여 묻지 말게 하고 진휼을 베풀도록 하였다."
2. [용어 및 제도 해설]
을해대기근(乙亥大飢饉, 1695~1696): 숙종 21년과 22년에 걸쳐 일어난 대기근으로, 이상 저온과 냉해로 농사가 전폐되어 경신대기근 이후 최대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정자각(丁字閣)과 제수(祭需): 왕릉 봉분 아래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제향용 전각과, 제사에 올리는 정갈한 밥·고기·과일 등의 음식.
대불경죄(大不敬罪): 국왕이나 왕실, 종묘를 훼손하거나 불경한 짓을 저지른 자를 다스리던 조선의 최고 형벌 조항.
3. [인물 및 역사적 배경]
숙종(1661~1720): 조선 제19대 국왕(재위 1674~1720). 환국 정치를 통해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으나, 을해대기근 당시에는 대동법 확대와 상평통보 유통, 진휼미 방출 등 민생 안정에 전력을 다했다.
조선 후기 왕릉 관리 제도: 각 능마다 능참봉(종9품)과 수릉군을 상주시켜 봉분을 지키고 제향을 엄수하도록 법제화되어 있었다.
4. [교차 사료 및 관련 연구]
《승정원일기》 및 《진휼등록(賑恤謄錄)》 숙종 21년 춘궁기 기록: 경기 및 충청 일대 기민 구호 대책과 왕릉 주변 진휼소 설치 일지 수록.
조선 사회복지사 연구: 을해대기근 당시 왕실의 범죄 처벌 유예와 진휼 조치를 유교적 인애(仁愛) 사상과 왕권의 도덕적 정당성 확보 전략으로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