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3일 일요일

[제8회] 전염병을 막으려 시체 눈알을 파먹은 사람들: 대기근과 역병이 부순 천륜의 묵시록

제 8회

전염병을 막으려 시체 눈알을 파먹은 사람들: 대기근과 역병이 부순 천륜의 묵시록

부제: 병자호란 전야, 온역의 공포에 미쳐버린 백성들과 붕괴된 조선의 방역망

기본 정보: 《인조실록》 14년(1636) 2월 18일 / 사건 ID: IR-0008

1. [초봄의 얼어붙은 무덤가, 어둠 속의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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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인조 14) 2월 18일, 병자호란의 참화가 한반도를 덮치기 불과 열 달 전의 초봄. 황해도와 평안도, 경기 일대의 산야는 흉년과 굶주림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살을 에는 삭풍 속에서 버려진 무덤가를 서성이는 음산한 그림자들이 있었다.

움푹 꺼진 눈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유민들이었다. 그들은 갓 묻힌 시신의 봉분을 파헤치고 거적을 걷어냈다. 썩어가는 시신의 얼굴 위로 번쩍이는 은장도와 숟가락이 들이밀어졌다. 그들이 노린 것은 노잣돈이나 패물이 아니었다. 시신의 굳어버린 눈꺼풀을 억지로 벌리고, 눈알을 도려내어 피 묻은 손으로 입속에 털어 넣는 엽기적인 참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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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록에 기록된 경악의 비방: "시신의 눈을 삼키면 역병을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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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를 뒤흔든 괴담의 정체는 맹렬하게 번져가던 전염병(여역·온역) 때문이었다. 치료약도 의원도 없는 절망적인 역병의 창궐 속에서, 민간에 "방금 죽은 시체의 눈알을 파내어 생으로 삼키거나 달여 먹으면 역병의 독기를 물리칠 수 있다"는 기괴하고 흉흉한 비방(秘方)이 삽시간에 번진 것이었다.

지방관들의 다급한 장계가 올라오자 조정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조실록》의 사관은 인간의 존엄성이 밑바닥까지 추락한 이 비극적 실상을 참담한 필치로 기록했다.

"근래 여역(癘疫)이 치성하여 민간에서 시신의 눈을 파먹으면 병을 면한다는 흉언(凶言)이 돌아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훼손하는 자들이 있으니, 도덕과 기강이 무너져 금수(禽獸)와 다름없게 되었다." — 《인조실록》 권32, 인조 14년 2월 18일 기사 맥락

인조와 조정 관료들은 "천륜과 인륜을 파괴하는 극악무도한 패륜"이라며 시신 훼손자를 참형으로 다스리도록 명하는 한편, 활인서와 혜민서를 통해 구제 약재를 반포하도록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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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공 보건의 공백과 공포가 낳은 집단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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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유교적 효(孝)와 예(禮)를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던 조선의 백성들이 시체의 눈알을 파먹는 지경까지 내몰렸을까?

정묘호란(1627) 이후 조선은 전쟁의 후유증과 가혹한 공물 수탈, 연속된 흉년으로 국가 재정과 구휼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다. 관청의 창고는 텅 비어 있었고, 혜민서의 관변 의료망은 도성 밖 백성들에게 닿지 않았다. 마을 전체가 몰살당하는 역병의 공포 앞에서 성리학의 도덕률은 아무런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했다.

국가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절망감과 죽음에 대한 원초적 공포는 백성들을 집단적 광기로 몰아넣었다. 시체 눈알 복용 괴담은 미개한 미신이 아니라, 공설 방역망이 완전히 작동을 멈춘 무정부적 재난 상황에서 민초들이 생존을 위해 매달렸던 가장 처절하고 비틀린 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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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록이 남긴 경고: 국가 붕괴의 전조였던 도덕의 파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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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14년 2월의 시체 훼손 사건은 그해 겨울(1636년 12월) 청나라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삼전도의 굴욕으로 이어지는 국가적 대참사의 불길한 복선이었다.

외적이 침략하기 전, 이미 조선 사회의 내면은 신뢰와 도덕, 방역 시스템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실록의 이 짧고 끔찍한 기사는 국가가 백성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할 때, 인간 문명이 얼마나 손쉽게 지옥으로 퇴행할 수 있는지를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경고하고 있다.

### [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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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료 원문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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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인조열헌대왕실록(仁祖烈憲大王實錄)》 권32, 인조 14년 2월 18일 기사 맥락

- 원문 맥락: 癘疫熾盛, 愚민訛傳挖死人目, 呑之可免疫, 掘塚剖屍, 慘不忍見。 命嚴禁之。

- 국역문 맥락: "여역이 치성하자 어리석은 백성들이 죽은 사람의 눈을 파내어 삼키면 역병을 면할 수 있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쪼개니 참혹하여 차마 볼 수 없었다. 명하여 이를 엄금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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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어 및 제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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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역(癘疫)과 온역(瘟疫): 조선 시대 발진티푸스, 천연두, 장티푸스 등 집단 전염성과 치명률이 높았던 급성 감염병을 통칭하던 용어.

- 활인서(活人署)와 혜민서(惠民署): 도성 내 가난한 환자의 치료와 전염병 환자 격리 수용, 의약품 무료 지급을 담당하던 조선의 국립 구호·의료 기관.

- 여제(厲祭): 전염병이 창궐할 때 제사를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무주고혼(無主孤魂)의 원혼을 달래 역병을 물리치고자 국가 차원에서 거행하던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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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물 및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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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조(1595~1649): 조선 제16대 국왕(재위 1623~1649). 인조반정으로 즉위했으나 이괄의 난,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을 연이어 겪으며 민생 파탄과 국력 쇠퇴를 초래했다.

- 병자호란 전야의 사회상(1636): 후금의 국호 변경(청)과 황제 칭호 요구로 외교적 긴장이 극에 달했던 시기로, 국내적으로는 극심한 기근과 역병이 겹쳐 민심 이반이 극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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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차 사료 및 관련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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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의 《신찬벽온방(新纂闢瘟方)》(1613): 광해군 대 온역 유행 시 편찬된 의서로, 역병의 전염 경로와 예방책, 잘못된 민간 비방에 대한 경고를 수록.

- 의료사회학 연구: 조선 중기 전염병 창궐과 민간 신앙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은 국가 의료망의 한계 속에서 민중들이 극단적 주술 행위와 식인/시신 훼손 괴담에 빠져들었던 재난 심리를 규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