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꾼 한스 (도박꾼 한슬)
오직 주사위와 카드 도박에만 미쳐 평생을 주막 바닥에서 탕진하던 악명 높은 도박꾼 '한스(Spielhansl)'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신분을 숨기고 지상을 유람하던 주님과 성 베드로(Sankt Petrus)가 한스의 집에서 하룻밤 묵기를 청했습니다. 한스가 가진 마지막 동전으로 빵과 포도주를 대접하자, 주님이 감복하여 영혼의 구원을 위한 세 가지 소원을 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스는 천국 구원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만한 세 가지 소원을 빌었습니다.
1. 내가 쥐기만 하면 무조건 이기는 '마법의 카드(Kartenspiel)'
2. 굴리기만 하면 원하는 숫자가 나오는 '마법의 주사위(Würfel)'
3. 누구든 올라가면 내가 허락할 때까지 절대로 내려오지 못하는 '마법의 사과나무(Apfelbaum)'
주님은 혀를 차며 소원을 들어주고 떠났습니다.
저승사자의 7년 결박과 도박 제패
마법의 도박 도구를 얻은 한스는 온 나라의 도박판을 휩쓸며 제후들과 국왕들의 금은보화를 싹쓸이하여 막대한 황금을 거머쥐었습니다.
마침내 한스의 수명이 다하자, 뼈만 앙상한 저승사자(죽음의 신/Tod)가 서슬 퍼런 낫을 들고 찾아와 한스의 목숨을 거두려 했습니다.
한스가 태연하게 간청했습니다.
"저승사자 나리, 저세상으로 떠나기 전 마당의 사과나무에 열린 달콤한 사과 한 알만 따서 맛보게 해주시오."
저승사자가 사과를 따러 나무 위로 기어오르는 순간, 한스가 사과나무에 마법을 걸어 저승사자를 나뭇가지에 찰싹 결박시켜 버렸습니다!
저승사자는 나무 위에서 7년 동안 꼼짝도 하지 못하고 매달려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7년 동안 온 세상에는 단 한 명의 인간도 죽지 않고 병자와 부상자들이 신음하는 기괴한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7년 뒤 주님이 천사들을 보내 사과나무에서 저승사자를 풀어주자, 격노한 저승사자는 번개처럼 한스를 덮쳐 그의 목을 단숨에 졸라 죽여버렸습니다.
지옥 악마들의 도박 약탈과 천국 습격
저승으로 떨어진 한스는 천국 문을 두드렸으나 성 베드로가 문을 굳게 잠갔고, 연옥에서도 쫓겨나 지옥의 불구덩이 문으로 내려갔습니다.
지옥의 군주 루시퍼와 악마들이 환호하며 한스를 가마솥에 집어넣으려 하자, 한스가 품속에서 마법의 카드를 꺼내 도박을 제안했습니다.
도박이 시작되자 한스는 연전연승을 거두며 지옥의 모든 황금과 보물, 그리고 수만 마리의 지옥 악마들의 영혼(Seelen)을 판돈으로 모조리 따내었습니다!
한스는 자신이 도박으로 노예로 삼은 수만 마리의 흉측한 악마 군단을 거느리고, 지옥을 박차고 나와 천국 문으로 진격했습니다.
쾅! 쾅! 콰과광!
악마들이 쇠갈퀴와 도끼로 천국의 황금 성문을 부수려 하자, 천국이 뒤흔들리며 성 베드로와 천사들이 사색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영혼의 분쇄와 도박꾼의 기원
천국으로 당당하게 입성한 한스는 천사들과 성인들을 상대로 다시 주사위 도박판을 벌이며 천국을 아수라장 도박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참다못한 하나님이 천둥 번개를 내리쳐 한스의 영혼을 번쩍 들어 올려 바닥으로 내동댕이쳤습니다.
콰아아앙!
한스의 오만한 영혼은 수백만 개의 파편으로 산산조각 박살이 났고, 그 흩어진 영혼의 파편들이 세상으로 날아가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도박꾼들의 심장 속으로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 깊이 읽기: 심층 주석 및 문학·민속학적 해설
[주석 1] 저승사자 결박과 죽음의 유예 (ATU 330: The Evil Smith/Gambling Hansel): 마법의 나무에 저승사자를 7년간 묶어두는 모티프는, 필멸의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원초적 저항과 자연 질서 교란의 그로테스크한 유머입니다.
[주석 2] 지옥 악마들을 털어버린 도박 트릭스터: 악마와의 계약에서 영혼을 빼앗기기는커녕 도박으로 악마들을 부하로 삼고 천국을 강제 점령하는 서사는, 민중이 상상한 가장 전복적이고 신성모독적인 카니발적 승리입니다.
[주석 3] 영혼 분쇄와 도박꾼의 에티올로지(Etiology/기원 설화): 산산조각 난 한스의 영혼이 세상의 도박꾼들에게 깃들었다는 결말은, 도박이라는 치명적 중독의 기원을 신화적으로 설명하는 기원담의 성격을 지닙니다.
스토리 요약 / 생각거리
주님에게 마법의 카드와 주사위를 얻은 도박꾼 한스가 저승사자를 7년간 나무에 묶어두고, 지옥 악마들을 도박으로 모조리 따내어 천국을 점령했다가 영혼이 산산조각 나 온 세상 도박꾼들의 기원이 되는 기상천외한 피카레스크 신화입니다.
※ 본 포스팅은 순화되기 전의 고전 원전 및 민담 전승을 바탕으로 번역·재구성한 이야기로, 다소 기괴하거나 서늘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