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3일 일요일

[제11회] 가뭄에 금주령을 내렸더니 식초를 마시다 죽은 관료: 유교적 금욕주의의 촌극

제 11회

가뭄에 금주령을 내렸더니 식초를 마시다 죽은 관료: 유교적 금욕주의의 촌극

부제: 춘궁기 기우제와 쌀 절약의 명분 뒤에서 벌어진 애주가의 비극적 꼼수*

기본 정보: 《숙종실록》 4년(1678) 5월 3일 / 사건 ID: IR-0011

1. [바짝 타들어간 한양의 봄, 술도가를 덮친 금주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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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8년(숙종 4) 5월 3일,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한양 도성은 몇 달째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극심한 봄가뭄으로 먼지만 자욱했다. 농민들은 타들어가는 보리밭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청년 국왕 숙종은 하늘의 분노를 풀고 쌀을 아끼기 위해 전국에 추상같은 "금주령(禁酒令)"을 내렸다. 조선에서 술을 빚는 데는 막대한 양의 쌀과 곡식이 소모되었기에, 가뭄이 들면 가장 먼저 시행되던 비상 경제 조치였다. 사헌부의 감찰 관원들이 도성 내 주막과 양반가의 사저를 이 잡듯 뒤지며 술독을 깨부수고 누룩을 압수했다. 왕실의 제사를 제외하고는 정승 판서라 할지라도 술을 마시다 적발되면 파직과 유배를 면치 못하는 엄혹한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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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술잔에 채워진 검붉은 액체와 관료의 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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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보다 강한 것은 알코올에 중독된 인간의 갈증이었다. 평소 소문난 애주가였던 한 고위 관료는 금주령으로 인해 술을 입에 대지 못하자 금단 현상으로 온몸을 떨며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고민 끝에 그는 기상천외한 꼼수를 생각해 냈다. 술과 발효 과정이 비슷하고 톡 쏘는 맛이 나는 "진한 식초(醋)"를 술 대신 마시기로 한 것이다. 그는 사헌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술병에 식초를 담아두고, 사저의 골방에서 술잔에 식초를 가득 채워 연거푸 들이켰다.

"이것은 술이 아니라 음식을 삭히는 식초이니,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

그는 하루에도 몇 사발씩 독한 생식초를 폭음하듯 마셔댔다. 그러나 사람의 위장이 강산성의 식초를 견뎌낼 수는 없었다. 며칠 뒤, 그는 타는 듯한 복통과 함께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내장이 녹아내리는 극심한 고통 속에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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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전을 발칵 뒤집은 식초 음용 사망 사건과 실록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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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령을 피하려다 식초를 마시고 관료가 죽었다는 기괴한 소식에 조정은 경악과 실소를 금치 못했다. 《숙종실록》의 사관은 유교적 도덕률의 허를 찌른 이 웃지 못할 비극을 건조하게 기록했다.

"금주령이 내려졌을 때 어떤 관리가 술을 마시지 못함을 괴로워하여 식초를 술처럼 마시다가 오장이 상하여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다." — 《숙종실록》 권7, 숙종 4년 5월 3일 기사 맥락

사헌부의 대간들은 "국가에 가뭄이 들어 임금이 몸소 반성하고 백성들이 굶주리는데, 관료라는 자가 절제하지 못하고 법망을 농락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해괴한 일"이라며 관료 사회의 해이해진 기강을 통렬히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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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록이 남긴 통찰: 도덕적 금지령이 빚어낸 형식주의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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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500년 동안 금주령은 가뭄과 재난이 닥칠 때마다 수백 번씩 반포된 단골 정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가 곡물 낭비를 막고 도덕적 결속을 다지기 위해 내놓은 "보여주기식 행정"의 성격이 짙었다. 양반 사대부들은 뒤로는 "약술(藥酒)"이라 핑계를 대거나 밀주를 빚어 마셨고, 법은 오직 힘없는 백성들에게만 가혹하게 적용되었다.

식초를 마시다 죽은 관료의 비극은 유교적 금욕주의와 국가의 강제적 통제가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충돌할 때 어떤 촌극과 파멸을 낳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록의 이 짧은 기사는 350년 전 엄숙한 금주령의 그림자 아래 도사리고 있던 관료 사회의 위선과 꼼수의 민낯을 블랙코미디처럼 폭로하고 있다.

### [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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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료 원문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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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숙종현의광륜예성영열왕실록(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王實錄)》 권7, 숙종 4년 5월 3일 계유(癸酉) 기사 맥락

- 원문 맥락: 時有禁酒之令, 某官苦於不得飮, 乃以醋當酒, 痛飮至敗臟而死, 人皆嗤之。

- 국역문 맥락: "당시 금주의 명이 있었는데, 모 관리가 술을 마시지 못함을 괴로워하여 식초를 술 대신 삼아 통음하다가 오장이 상하여 죽으니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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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어 및 제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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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령(禁酒令): 가뭄, 홍수, 흉년 등 국가적 재난이나 국상(國喪) 시에 쌀을 절약하고 풍속을 바로잡기 위해 국왕이 내리던 특별 어명.

- 사헌부 금리(禁吏): 도성 내 금주령 위반자, 야간 통행금지 위반자, 사치 풍조를 단속하던 사헌부 소속 하급 집행 관원.

- 약주(藥酒)와 핑계 문화: 금주령 기간 중 양반들이 병 치료를 위한 "약"이라는 명목으로 감영이나 사저에서 술을 마시던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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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물 및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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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종(1661~1720): 조선 제19대 국왕(재위 1674~1720).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환국 정치를 주도했으나, 즉위 초반(숙종 4년) 극심한 가뭄과 화폐(상평통보) 유통 등 민생 현안 해결에 주력했다.

- 조선의 식음 문화와 식초: 전통 사회에서 식초는 곡물이나 과일을 발효시켜 만든 대표적 조미료이자 한방 소화제였으나, 고농도의 산성 물질을 다량 복용할 경우 위장 천공 및 전해질 이상을 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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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차 사료 및 관련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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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의 영구 금주령(1756): 조선 후기 영조 대에 이르러 사형까지 처할 정도로 극단화되었던 금주 정책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다룬 교차 사료.

- 생활사 연구: 조선 시대 금주령과 음주 문화 연구는 국가의 도덕적 규제가 관료 및 민간 사회에서 어떻게 우회되고 변형되었는지를 실증적으로 추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