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전에서 술주정을 부린 우의정: 피바람 부는 환국의 궁궐, 만취한 재상의 실언
부제: 장희빈 사사를 앞둔 숙종의 어전, 서슬 퍼런 침묵을 깬 우의정의 주폭(酒暴)*
기본 정보: 《숙종실록》 27년(1701) 9월 28일 / 사건 ID: IR-0012
1. [살얼음판 같은 심야의 편전,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선 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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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년(숙종 27) 9월 28일 밤, 창덕궁 편전. 대궐 안은 숨소리조차 내기 힘들 만큼 팽팽한 살기로 얼어붙어 있었다. 인현왕후 민씨가 승하한 직후, 희빈 장씨가 취선당에 신당을 차려 중전을 저주했다는 '무고의 옥(巫蠱之獄)'이 터져 장희재를 비롯한 관련자들이 줄줄이 하옥되어 피투성이가 되던 시점이었다. 국왕 숙종은 희빈 장씨에 대한 사사(賜死) 결단을 눈앞에 두고 서슬 퍼런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바로 그 엄혹한 어전에 일국의 정1품 재상인 우의정이 비틀거리며 들어섰다.
자리바닥에 엎드린 우의정의 입에서는 역한 술 냄새가 진동했고, 갓은 삐뚤어져 있었다. 엄숙한 어전 회의에서 신하들은 왕의 눈치만 보며 엎드려 있었는데,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의 우의정이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어전의 정적을 깨뜨렸다. 당대 최고의 절대권력자 숙종의 면전에서 횡설수설하며 왕의 가혹한 처사와 정국 운영을 비난하는 대담한 술주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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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얼어붙은 어전과 실록에 박제된 주정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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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와 사관, 곁에 있던 대신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조선 왕조에서 국왕 면전의 어전 회의는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도 엄격한 예법(국조오례의)이 적용되는 지엄한 공간이었다. 하물며 세 번의 환국으로 수많은 정승 판서의 목을 가차 없이 베어 넘겼던 '철혈의 환국 군주' 숙종 앞에서 만취하여 주정을 부린 것은 불경죄를 넘어 목숨을 내놓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숙종실록》의 사관은 어전을 발칵 뒤집어놓은 이 전대미문의 주폭 사건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우의정이 술에 취하여 입시(入侍)하였는데, 말이 조리가 없고 언행이 지극히 거칠고 방자하여 온 좌우가 실색하였다." — 《숙종실록》 권35, 숙종 27년 9월 28일 기사 맥락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들은 즉각 격앙되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일국의 정승이 만취하여 감히 어전에 들어와 군왕을 능멸하고 술주정을 부렸으니, 이는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린 대죄"라며 당장 삭탈관직하고 의금부에 하옥하여 국문해야 한다고 맹렬히 탄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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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환국 정치의 공포와 술의 힘을 빌린 관료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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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평생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회한 정승이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 어전 음주 난동을 벌였을까?
숙종 연간의 정국은 서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상대 당파를 사형과 유배로 몰살시키는 피비린내 나는 '환국(換局)'의 연속이었다.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극도의 공포와 정신적 스트레스 속에서 관료들의 신경은 마모될 대로 마모되어 있었다.
특히 장희빈의 처벌 문제를 둘러싸고 세자(훗날 경종)의 안위를 걱정하던 소론과, 장희빈의 즉각 사사를 주장하던 노론 사이에서 우의정은 극심한 정치적 딜레마에 갇혀 있었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권력의 압박감과 파멸의 공포가, 결국 금기를 깨부순 대낮의 폭음과 어전 술주정이라는 파격적인 일탈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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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록이 남긴 통찰: 절대군주와 신하들의 위태로운 가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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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숙종은 불같이 화를 내며 참형을 내릴 것이라는 신하들의 예상을 깨고, 우의정에 대해 가벼운 견책과 직무 정지 처분을 내리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했다. 장희빈의 처형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폭풍을 앞두고, 정국의 안정을 위해 늙은 재상의 술주정을 '취중 실수'로 덮어주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한 것이었다.
실록의 어전 술주정 기록은 근엄한 유교적 군신 관계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당쟁의 살벌한 공포와, 목숨을 걸고 줄타기를 해야 했던 조선 관료들의 비루하고 처절한 생존 풍경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 [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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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료 원문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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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숙종현의광륜예성영열왕실록(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王實錄)》 권35, 숙종 27년 9월 28일 기사 맥락
- 원문 맥락: 右相醉酒入侍, 言辭荒亂, 舉止無禮, 臺諫請罪之. 上以醉後失言, 命從輕處分.
- 국역문 맥락: "우상이 술에 취하여 입시하였는데 말과 글이 거칠고 어지러우며 거동에 예의가 없으니, 대간이 죄주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취한 뒤의 실언이라 하여 가볍게 처분하도록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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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어 및 제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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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의정(右議政): 조선 시대 최고 행정 관청인 의정부의 정1품 정승. 영의정, 좌의정과 함께 삼정승(三政丞)을 구성하는 국정 최고 책임자.
- 입시(入侍): 신하가 국왕의 편전이나 어전에 나아가 국정을 보고하고 어명을 받들던 공식 알현 절차.
- 무고의 옥(巫蠱之獄, 1701): 인현왕후 민씨 승하 직후, 희빈 장씨가 취선당에 신당을 차려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고변으로 촉발된 대규모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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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물 및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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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종(1661~1720): 경신환국(1680), 기사환국(1689), 갑술환국(1694) 등 급격한 정권 교체(환국)를 통해 신권을 억누르고 왕권을 극대화한 군주.
- 1701년 9월의 긴박한 정국: 숙종은 희빈 장씨에게 자진(사사)을 명하기 직전이었으며, 세자의 사친(생모)을 죽이는 문제를 두고 노론(강경 처벌)과 소론(온건 수습)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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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차 사료 및 관련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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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려실기술》 및 《승정원일기》 숙종 27년 기사: 무고의 옥 당시 조정 대신들의 심리적 공황 상태와 어전 회의의 살벌한 분위기에 관한 기록 수록.
- 조선 정치사 연구: 숙종대 환국 정치가 관료들에게 미친 심리적 불안과 당쟁의 과열 양상을 분석하는 주요 미시사 사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