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3일 일요일

[제13회] 훈련도감 군사들의 솥 파괴 시위: 썩은 쌀 급료와 상비군의 폭동

제 13회

훈련도감 군사들의 솥 파괴 시위: 썩은 쌀 급료와 상비군의 폭동

부제: 쇠몽둥이로 깨부순 군영의 가마솥, 조선 최정예 부대가 굶주림에 봉기한 날*

기본 정보: 《숙종실록》 32년(1706) 12월 11일 / 사건 ID: IR-0013

1. [동지섣달의 혹한, 훈련도감 군영을 뒤흔든 쇠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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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년(숙종 32) 12월 11일, 칼바람이 몰아치던 한양 도성의 훈련도감(訓鍊都監) 군영. 도성 방어와 국왕의 신변을 호위하는 조선 최고의 직업 군인 부대인 훈국(訓局) 군영의 넓은 마당에 수백 명의 군사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몰려들었다.

조총과 환도를 쥔 군사들의 얼굴은 분노와 굶주림으로 흉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칼 대신 굵은 쇠몽둥이와 큰 돌덩이가 들려 있었다.

"더러운 썩은 모래 밥을 먹고 어찌 군무를 선단 말인가!"

"가족들이 굶어 죽어가는데 솥을 걸어두어 무엇하겠는가!"

'쾅! 콰당탕!' 군사들은 군영의 거대한 취사장으로 돌진하여 취사반에 걸려 있던 대형 가마솥(鼎)들을 쇠몽둥이로 무자비하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쇠붙이가 깨져나가는 파열음과 함께 솥단지들이 박살 나 사방으로 튀었고, 훈련도감 대청 일대는 순식간에 반란의 현장처럼 아수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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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록에 기록된 파정(破鼎)의 충격: "군병들이 솥을 깨고 난동을 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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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영의 솥을 깨부수는 '파정(破鼎)'은 군사 조직에서 "더 이상 밥을 지어 먹지도 않고, 군복무도 하지 않겠다"는 직업 군인들의 집단 파업이자 최후통첩이었다. 도성 한복판에서 국가 최정예 군대가 무력시위를 벌였다는 급보에 숙종과 훈련대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숙종실록》은 이 초유의 군병 집단 항명 사건을 긴박하게 기록했다.

"훈련도감의 군병들이 급료로 지급된 쌀이 거칠고 모래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 무리를 지어 소동을 일으키고, 마침내 솥을 깨뜨리고 대장을 둘러싸고 불만을 터뜨렸다." — 《숙종실록》 권44, 숙종 32년 12월 11일 기사 맥락

무장한 직업 군인들의 집단 폭동은 자칫 도성 전체의 치안 붕괴와 군사 쿠데타로 비화할 수 있는 국가 안보의 비상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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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군량미 횡령과 썩은 쌀: 국가 상비군 제도의 구조적 파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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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창설된 훈련도감 군사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오직 군무에만 종사하며 매달 국가로부터 쌀과 면포(급료)를 받아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전문 상비군(모병제 군인)이었다.

그러나 숙종 대에 이르러 국가 재정이 고갈되자, 군사들에게 지급되는 삭료(급료)가 몇 달씩 연체되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호조와 선혜청, 군영의 부패한 군관들이 결탁하여 좋은 쌀은 빼돌려 착복하고, 군사들에게는 겨와 모래가 절반 이상 섞인 썩은 쌀을 배급했다. 처자식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다 길거리로 나앉게 되자,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군사들이 참아왔던 분노를 솥 파괴라는 극단적 폭력으로 표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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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록이 남긴 통찰: 총칼을 든 자들의 밥그릇이 흔들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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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신속하게 진화에 나섰다. 솥을 부수고 난동을 주동한 주모자 몇 명을 군법에 따라 처벌하는 한편, 군량미를 농락하고 썩은 쌀을 배급한 부패 군관들을 색출하여 파직하고 곤장을 쳤다. 그리고 즉시 국고의 온전한 쌀을 풀어 밀린 급료를 전액 지급하고 군사들을 위무했다.

이 사건은 1882년 일어난 '임오군란(壬午軍亂)'의 정확한 180년 전 예고편이었다. 국가의 안보를 지탱하는 군대라 할지라도, 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최소한의 생존권(밥그릇)마저 보장하지 못할 때 군대는 가장 위협적인 반역의 칼날로 돌변한다는 냉혹한 역사적 교훈을 실록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 [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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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료 원문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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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숙종현의광륜예성영열왕실록(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王實錄)》 권44, 숙종 32년 12월 11일 기사 맥락

- 원문 맥락: 訓鍊軍兵以給料米粗惡, 聚噪破鼎, 犯官長. 上命鞫治首惡, 仍令賑恤諸軍.

- 국역문 맥락: "훈련도감 군병들이 급료로 준 쌀이 조악하다 하여 떼를 지어 떠들며 솥을 깨뜨리고 관장(官長)을 범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우두머리를 국문하여 다스리게 하고, 이어서 여러 군사들을 진휼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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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어 및 제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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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도감(訓鍊都監):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중 유성룡의 건의로 창설된 조선 후기 중앙 오군영의 핵심 군영. 포수(총병), 사수(활), 살수(창칼)의 삼수미(三手米) 제도를 기반으로 한 상비 직업군인 조직.

- 급료(삭료, 朔料): 훈련도감 군병들에게 매달 지급되던 쌀과 콩, 면포. 군사들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 파정(破鼎): 군영의 가마솥을 부수는 행위로, 밥을 짓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파업 및 집단 저항의 상징적 군사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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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물 및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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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군제 개편과 재정난: 17세기 후반 대동법 실시와 대일·대청 무역의 안정에도 불구하고, 잦은 자연재해와 군량미 관리 체계의 부패로 인해 군영의 재정이 자주 파탄에 직면했다.

- 임오군란(1882)과의 비교: 1882년 구식 군인들이 13개월간 밀린 급료로 겨와 모래가 섞인 쌀을 받자 봉기했던 임오군란과 구조적 원인 및 전개 양상이 정확히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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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차 사료 및 관련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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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정원일기》 및 《비변사등록》 숙종 32년 기록: 군병 소동 이후 군량미 검수 규정 강화 및 군관 처벌에 관한 조정의 대책 회의 수록.

- 군제사 및 사회사 연구: 훈련도감 군병들의 도시 빈민화 과정과 급료 투쟁을 통해, 조선 후기 직업 군인 계층의 사회경제적 처지와 저항 의식을 규명하는 대표 사료로 평가된다.

### [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