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3일 일요일

[제18회] 표류해 온 서양인의 시계를 분해한 관청: 1846년 자명종(自鳴鐘) 해체 소동

제 18회

표류해 온 서양인의 시계를 분해한 관청: 1846년 자명종(自鳴鐘) 해체 소동

부제: 째깍거리는 쇠 상자 속 귀신을 찾아서, 19세기 조선 관료와 서양 정밀기계의 충돌

기본 정보: 《헌종실록》 12년(1846) 8월 2일 / 사건 ID: IR-0018

1. [서해 앞바다의 이양선, 관아로 들어온 기괴한 쇠 상자]

1846년(헌종 12) 8월 2일 늦여름, 충청도 홍주 외연도 앞바다. 거대한 돛과 검은 포문을 단 프랑스 군함(이양선) 세 척이 나타나 조선 조야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서양 군함이 물러간 뒤 해안가 표류선과 접촉 현장에서 관아의 관리들이 서양인들이 남기고 간 낯선 기물 하나를 수습했다. 손바닥만 한 둥근 금속 통 안에서 '째깍, 째깍'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고, 유리알 속의 가느다란 쇠침이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정해진 시각이 되자 맑고 청아한 방울 소리(자명, 自鳴)를 울려대는 신기한 서양식 시계(자명종·회중시계)였다. 관아의 아전들과 수영의 군관들은 혼비백산하여 물러섰다. "안에 살아있는 벌레나 귀신이 들어있는 것이 틀림없다", "사람의 넋을 빼앗는 서양 요물이다"라며 수군거림이 들끓었다.

2. [실록에 기록된 자명종 분척(分拆): 톱니바퀴와 태엽의 미스터리]

기이한 물건을 조사하라는 상부의 명에 따라, 관청의 기술 관원들과 놋쇠 장인들이 동원되었다. 그들은 쇠 상자 속에 숨겨진 '동력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칼과 톱, 정을 들이대고 시계를 낱낱이 뜯어내기 시작했다. 황동 뚜껑을 강제로 젖히자, 수십 개의 정교한 톱니바퀴와 용수철 태엽, 미세한 보석 축받이가 쏟아져 나왔다. 장인들은 쥐꼬리만 한 나사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의 정밀함에 넋을 잃었으나, 한 번 뜯어낸 정밀 기계를 다시 조립할 수 있는 기술은 조선에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울리던 기적의 시계는 한 줌의 부서진 고철 조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헌종실록》의 기록관은 서양 이양선의 출몰과 함께 노획된 신기한 기계 시계(자명종)의 정체와 해체 과정을 기록했다. *"이양선이 남긴 물건 중에 스스로 때를 맞추어 소리를 내는 자명종(自鳴鐘)이 있어, 관청에서 이를 가져다 쪼개어 살펴보니 극히 정교하고 기묘하여 사람이 만든 것 같지 않았다." — 《헌종실록》 권13, 헌종 12년 8월 2일 기사 맥락*

3. [산업혁명의 정밀 공학과 쇄국 조선의 기술적 단절]

어떻게 서양인에게는 일상적인 항해 도구였던 시계가 조선 관청에서는 해체 소동의 대상이 되었을까? 19세기 중엽 유럽은 산업혁명을 거치며 대량 생산된 정밀 태엽 시계와 증기기관, 근대 천문 항해술을 완성하고 있었다. 반면 조선은 세종 대의 자격루와 혼천의 등 찬란했던 과학 전통이 임진왜란과 호란, 그리고 성리학적 농본주의의 굴레 속에서 계승되지 못한 채 단절되어 있었다. 서양의 시계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시간의 표준화와 근대적 분업, 과학기술의 총체였다. 그러나 쇄국과 척사의 장벽에 갇혀 있던 조선의 지배층은 이를 '기교를 부린 요망한 물건(신기음교, 神奇淫巧)'으로 치부하며, 그 속에 담긴 근대 과학의 거대한 충격을 외면했다.

4. [기록이 남긴 통찰: 분해된 톱니바퀴가 가리킨 역사의 시계추]

시계를 뜯어보며 "귀신이 만든 것 같다"고 감탄하면서도, 끝내 다시 맞추지 못하고 내버려 둔 조선 관청의 해체 소동은 다가올 개화기 조선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양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문턱에서, 조선은 미지의 기술을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분해해 보았지만 그 작동 원리와 시대적 파도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실록에 남겨진 부서진 자명종의 톱니바퀴들은, 세계사의 거대한 시계추가 조선의 턱밑까지 다가왔음을 알리는 서글프고도 날카로운 경종이었다. [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

1. [사료 원문 및 출처]

- 출전: 《헌종경문완무명인철효대왕실록(憲宗實錄)》 권13, 헌종 12년 8월 2일 정유(丁酉) 기사 맥락**

- 원문 맥락: 洋船遺物中, 有自鳴鐘, 能自報時。 官府分拆視之, 輪機極其精巧, 殆非人工所能爲。

- 국역문 맥락: "양선(서양 배)의 유류품 중에 자명종이 있어 능히 스스로 때를 알렸다. 관부에서 이를 쪼개어 살펴보니 바퀴와 기계가 지극히 정교하여 거의 사람이 능히 만들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

2. [용어 및 제도 해설]

- 자명종(自鳴鐘)과 시령표(時令表):** 태엽과 톱니바퀴 장치로 정해진 시각마다 소리를 내거나 시간을 가리키는 서양식 기계 시계. 명·청대 선교사들을 통해 동아시아에 유입되었다.

- 이양선(異樣船): 조선 말기 연안에 출몰하던 서양의 증기선과 범선 등 모양이 낯선 배를 통칭하던 말.

- 신기음교(神奇淫巧): 유교 도덕에 어긋나는 기이하고 교묘한 기계나 기술을 비하하여 부르던 성리학적 표현.#### **

3. [인물 및 역사적 배경]

- 1846년 프랑스 함대 출몰 사건:** 프랑스 해군 세실(Cécile) 제독이 군함 3척을 이끌고 충청도 외연도에 정박하여,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3인(앵베르 주교 등)에 대한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회답을 요구한 사건.

- 병오박해(1846):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서양 선교사 입국로를 개척하다 체포되어 순교한 해.#### **

4. [교차 사료 및 관련 연구]

- 《승정원일기》 헌종 12년 8월 기사 및 충청감사 장계:** 서양 군함과의 문정(問情) 과정 및 유류품 압수 목록 수록.

- 과학기술사 연구: 19세기 조선 관료들의 서양 과학 기물에 대한 반응을 분석한 연구들은 기술에 대한 높은 관찰력과 이를 국가적 공업으로 연결하지 못한 제도적 한계를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