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3일 일요일

정주성을 폭파한 땅굴 화약 작전: 1812년, 홍경래의 난과 1,800근 화약의 폭발

제36회

정주성을 폭파한 땅굴 화약 작전: 1812년, 홍경래의 난과 1,800근 화약의 폭발

부제: 100일간의 처절한 농성, 성벽을 통째로 날려버린 조선 관군의 지하 갱도 공성전
기본 정보: 《순조실록》 12년(1812) 4월 19일 / 사건 ID: IR-0036
1. [100일간의 고립, 피비린내 나는 정주성의 봄]
1812년(순조 12) 4월 19일 아침, 평안도 정주성(定州城). 서북인에 대한 차별과 가혹한 세도정치의 수탈에 맞서 평서대원수 홍경래(洪景來)가 깃발을 든 지 5개월, 그리고 관군에게 포위되어 정주성에 갇힌 지 100여 일이 흐른 때였다.성안의 상황은 처참했다. 식량과 물이 바닥나 풀뿌리와 군마의 가죽을 끓여 먹으며 버텼고, 관군의 맹렬한 대포 공격에 사방이 불바다가 되었으나 홍경래와 수천 명의 농민·봉기군은 결사 항전을 멈추지 않았다.성벽을 정면으로 뚫지 못한 관군은 결국 전대미문의 지하 공성 작전에 돌입했다. 성 밖 수백 보 밖에서부터 정주성 북문 성벽 밑바닥을 향해 밤낮으로 땅굴(지도, 地道)을 파고 들어간 것이었다.
2. [실록에 기록된 천지개벽의 순간: 1,800근 화약의 대폭발]
1812년 4월 19일 새벽, 성벽 밑 지하 갱도 끝자락에 무려 1,800근(수십 포대)에 달하는 흑색 화약이 가득 채워졌다. 관군 공병들이 갱도 밖으로 빠져나온 뒤 길게 늘어뜨린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콰콰콰쾅!'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흙먼지와 거대한 화염이 솟구쳐 올랐다. 난공불락을 자랑하던 정주성의 견고한 석벽 수십 보가 통째로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무너진 성벽 틈으로 흙먼지를 뚫고 관군 선봉대가 총검을 앞세우며 노도와 같이 돌입했다. 홍경래는 성벽 위에서 지휘하다가 관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고, 부원수 김사용과 우군칙, 홍총각 등 지도부와 성안의 수많은 농민들이 체포되었다.《순조실록》의 기록관은 정주성 함락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했다.*"관군이 땅굴을 파고 화약을 묻어 성벽을 폭파하고 성내로 돌입하니, 적괴 홍경래는 총에 맞아 죽고 그 무리를 모두 섬멸하여 마침내 정주성을 수복하였다." — 《순조실록》 권15, 순조 12년 4월 19일 기사 맥락*
3. [1,917명의 참수와 피로 물든 서북의 산하]
정주성 함락 후 이어진 관군의 보복은 무자비했다. 성안에서 체포된 2,983명 중 부녀자(842명)와 10세 이하 어린이(224명)를 제외한 1,917명의 성인 남성 전원이 그 자리에서 참수형을 당해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홍경래의 난은 단순한 도적 떼의 반란이 아니었다. 광산 노동자, 빈농, 몰락 양반, 무역 상인 등 19세기 조선의 모순에 신음하던 모든 계층이 연대한 최초의 대규모 근대적 농민 항쟁이었다. 화약 폭파로 성벽이 무너진 것은 단순한 요새의 파괴가 아니라, 500년 조선 왕조의 지배 질서에 회복할 수 없는 거대한 파열구가 생겼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4. [기록이 남긴 통찰: 화약 연기 속에 새겨진 민중의 이름]
홍경래는 전사하여 목이 베여 한양 저잣거리에 내걸렸으나, 그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고 '홍경래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시 올 것이다'라는 민중의 구원 설화로 부활했다.실록에 박제된 1812년 정주성 폭파 작전은, 억압과 차별에 맞서 목숨을 걸고 성벽을 지켰던 민초들의 뜨거운 절규와, 무너져가는 왕조가 화약과 피로 써 내려간 쓸쓸한 종막의 기록이다. [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
1. [사료 원문 및 출처]
- 출전: 《순조선각연덕현도경인순희체성응명흠광석경계천배극융원돈휴의행명모명광순효대왕실록(純祖實錄)》 권15, 순조 12년 4월 19일 정미(丁未) 기사 맥락**
- 원문 맥락: 官軍掘地道, 盛火藥爆破城堞, 乘煙突入。 賊魁洪景來中丸死, 遂克定州城。
- 국역문 맥락: "관군이 땅굴을 파고 화약을 가득 채워 성벽을 폭파한 뒤 연기를 틈타 돌입하였다. 적괴 홍경래는 탄환에 맞아 죽었고, 마침내 정주성을 함락하였다."#### **
2. [용어 및 제도 해설]
- 홍경래의 난(1811~1812):** 순조 11년 12월 평안도 가산에서 시작되어 청천강 이북 8개 고을을 점령하고 5개월간 이어진 대규모 농민 항쟁.
- 지도(地道) 폭파 공성술: 성벽 아래로 터널을 뚫고 대량의 화약을 폭파해 성벽을 무너뜨리는 고대·근대 공성 전술.
- 평서대원수(平西大元首): 홍경래가 거병 당시 스스로를 칭한 군사 지휘관 칭호.#### **
3. [인물 및 역사적 배경]
- 서북인 차별과 세도정치:** 조선 왕조는 평안도·함경도 출신 인재의 중앙 등용을 제한했고, 안동 김씨 세도정치기 극심한 조세 수탈이 겹쳐 서북 민심이 폭발했다.
- 순무중군 박기풍과 도원수부: 한양에서 파견된 정규 진압군으로 정주성 포위 후 땅굴 작전을 주도했다.#### **
4. [교차 사료 및 관련 연구]
- 《순무영진등록(巡撫營陣謄錄)》:** 관군 지휘부가 매일 기록한 정주성 전투 및 화약 매설 공병 작전의 상세 군사 일지 수록.
- 한국 근대사 연구: 홍경래의 난을 조선 후기 봉건 해체기 농민층의 계급적 각성과 반봉건 민중 운동의 출발점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