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3일 일요일

프랑스군의 강화도 침공과 외규장각 도서 약탈: 1866년 병인양요, 잿더미가 된 왕실 문고

제38회

프랑스군의 강화도 침공과 외규장각 도서 약탈: 1866년 병인양요, 잿더미가 된 왕실 문고

부제: 297권의 왕실 의궤를 싣고 떠난 군함, 정족산성의 총성과 145년의 유랑
기본 정보: 《고종실록》 3년(1866) 9월 21일 / 사건 ID: IR-0038
1. [강화도에 들이닥친 서양 군함, 외규장각으로 향한 군홧발]
1866년(고종 3) 가을, 서해의 요충지 강화도.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Roze) 제독이 이끄는 군함 7척과 600여 명의 프랑스 해병대가 강화산성을 함락하고 관아와 왕실 행궁을 점령했다. 프랑스 군인들의 시선이 대궐 행궁 한편에 자리 잡은 고풍스러운 전각으로 향했다. 정조가 왕실의 가장 귀중한 서책과 어진을 영구 보관하기 위해 세웠던 외규장각(外奎章閣)이었다. 자물쇠를 부수고 문을 연 프랑스 장교들은 탄성을 질렀다. 서가에는 화려한 비단 표지에 황금빛 놋쇠 장식을 두르고, 조선 최고의 화원들이 천연 안료로 궁중 의례를 세밀하게 그려 넣은 수백 권의 '왕실 의궤(儀軌)'가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장교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상자 19개 분량의 은괴와 함께 가장 화려하고 보존 상태가 좋은 어람용 의궤 297권과 지도, 족자들을 골라 군함으로 실어 날랐다. 그리고 남은 수천 권의 서적과 외규장각 전각 전체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었다.
2. [실록에 기록된 정족산성의 대첩과 퇴각하는 양이(洋夷)]
프랑스군의 만행에 조선 조정은 비통함과 분노에 휩싸였다. 침략자들을 격퇴하기 위해 양헌수(梁憲洙) 장군이 이끄는 500여 명의 조선 포수 부대가 한밤중 조용히 강화해협을 건너 정족산성(삼랑성)으로 잠입했다. 11월 9일, 기고만장하게 산성으로 진격해 온 프랑스군을 향해 성벽 뒤에 매복해 있던 조선 포수들이 일제히 화승총을 난사했다. 빗발치는 총탄에 프랑스군 30여 명이 쓰러지며 패주했고, 공황 상태에 빠진 로즈 제독은 강화도를 불태우고 약탈한 의궤와 은괴를 실은 채 중국으로 도주하듯 철수했다. 《고종실록》의 기록관은 강화도 침략과 외규장각 약탈, 그리고 정족산성 승전을 기록했다. *"프랑스 오랑캐가 강화부를 점령하고 행궁의 서책과 은괴를 약탈한 뒤 불태웠으나, 순무천총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적을 기습하여 격퇴하니 적선이 마침내 바다로 달아났다." — 《고종실록》 권3, 고종 3년 9월 21일 및 10월 기사 맥락*
3. [문명의 약탈자가 된 제국주의와 조선 기록 문화의 정수]
프랑스 군인들은 미개한 야만의 나라를 응징하러 왔다고 자부했으나, 외규장각에서 마주한 조선의 기록 문화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기록물보다 훨씬 정교하고 품격이 높았다. 의궤는 국왕의 혼례, 장례, 궁중 연회, 건축의 전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완벽하게 박제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자 인류 기록 문화의 정점이었다. 프랑스군은 그 가치를 알아보았기에 약탈해 갔고, 파리 국립도서관의 어두운 서고 속에서 '파비앵(Chinois) 중국 서적'으로 분류되어 100년 넘게 방치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4. [기록이 남긴 통찰: 145년 만에 돌아온 민족의 혼]
1970년대 재불 역사학자 고(故) 박병선 박사의 끈질긴 추적과 전 국민적 반환 운동 끝에,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의궤 297권은 2011년 마침내 14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실록에 새겨진 1866년의 상처는, 제국주의 침략의 야만성과 이에 맞서 조국을 지켜낸 선열들의 피눈물, 그리고 어떤 전란과 약탈 속에서도 결코 훼손되지 않는 조선 기록 문화의 위대한 생명력을 웅변하고 있다. [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
1. [사료 원문 및 출처]
- 출전: 《고종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범승천체도위덕융공지신희문헌무경헌순효태황제실록(高宗實錄)》 권3, 고종 3년 9월 21일 및 10월 병인양요 기사 맥락**
- 원문 맥락: 法夷陷江華, 縱火焚蕩, 掠取外奎章閣書籍銀塊, 千總梁憲洙伏兵鼎足山城, 大破之, 夷賊退衄。
- 국역문 맥락: "프랑스 오랑캐가 강화를 함락하고 불을 질러 태우며 외규장각의 서책과 은괴를 약탈하였으나, 천총 양헌수가 정족산성에 복병을 두어 크게 깨뜨리니 오랑캐 적들이 패하여 물러났다."#### **
2. [용어 및 제도 해설]
- 병인양요(丙寅洋擾, 1866):** 프랑스 함대가 병인박해를 구실로 강화도를 침공했다가 정족산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철수한 전쟁.
- 외규장각(外奎章閣): 1782년(정조 6) 강화도 행궁에 설치한 왕립 도서관 분관으로, 왕실 전용 어람용 의궤 등 1,000여 종 5,000여 권의 왕실 주요 도서를 보관했다.
- 어람용 의궤(御覽用 儀軌): 국왕이 열람하기 위해 최고급 초주지(草注紙)에 천연 안료로 필사하고 비단 표지와 놋쇠 변철로 장정한 최상급 의궤.#### **
3. [인물 및 역사적 배경]
- 양헌수(1816~1888):** 정족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조선군 지휘관으로, 화승총의 사거리와 산성 지형을 활용한 매복 작전으로 프랑스군을 격퇴했다.
- 박병선 박사(1923~2011):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최초로 발견하고 평생 반환 운동에 헌신한 서지학자.#### **
4. [교차 사료 및 관련 연구]
- 양헌수의 《병인일기(丙寅日記)》:** 정족산성 도하 및 전투 전 과정의 지휘관 친필 일지 수록.
-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 2011년 반환된 의궤의 역사적 가치와 도상학적 분석 연구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