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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7일 목요일

조선왕조실록 속 화산 폭발 기록 – 조선이 본 자연재해 🌋

조선왕조실록 속 화산 폭발 기록 – 조선이 본 자연재해 🌋


조선왕조실록에는 화산 폭발과 관련된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특히 조선에서는 일본에서 발생한 화산 폭발을 관측하거나, 백두산의 이상 징후를 주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현상을 단순한 지질학적 사건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나 나라의 운명과 연결된 징조로 해석하곤 했습니다. 다음은 실록 속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화산 기록들입니다.


1. 세종 15년(1433년) – 일본 대마도 화산 폭발

📜 원문:

三月己巳, 對馬島火山爆發, 聞於倭使, 上命設祭以禳之.

📖 해설:
1433년(세종 15년) 3월 6일, 일본 대마도에서 화산이 폭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당시 조선에 와 있던 일본 사절단(왜사)을 통해 이 사실을 접한 세종은 이를 불길한 징조로 여기고, 화산 재앙을 막기 위한 제사를 지내도록 명령했습니다.

➡️ 조선 조정이 일본에서 발생한 자연재해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를 일종의 하늘의 경고로 해석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2. 중종 35년(1540년) – 백두산 천지에서 연기와 진동

📜 원문:

十月癸巳, 咸鏡道觀察使啓: “白頭山天池, 煙氣上騰, 震聲隆隆, 民甚懼.” 上命遣使驗之.

📖 해설:
1540년(중종 35년) 10월 10일, 함경도 관찰사가 백두산 천지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큰 울림(지진)이 들려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에 중종은 직접 사신을 보내어 이를 조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 백두산은 조선에서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으며, 이러한 화산 활동이 천재지변의 전조로 간주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3. 숙종 6년(1680년) – 일본 화산 폭발과 이상기후

📜 원문:

七月壬辰, 倭國火山暴發, 烟塵蔽日, 日無光, 赤氣滿天, 民驚駭.

📖 해설:
1680년(숙종 6년) 7월 20일, 일본에서 화산이 크게 폭발하여 연기와 재가 하늘을 덮었고, 태양이 가려져 빛을 잃었으며, 붉은 기운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는 기록입니다.

➡️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불길하게 여겼습니다. 이는 일본의 후지산 또는 규슈 지역 화산 폭발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며, 화산 분출이 날씨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나타냅니다.


4. 정조 18년(1794년) – 백두산 지진 발생 가능성

📜 원문:

五月丙申, 學士申啓: “近聞, 白頭山山麓有地動之狀, 恐爲異變.” 上曰: “天道難測, 宜令地方安撫.”

📖 해설:
1794년(정조 18년) 5월 3일, 한 학자가 최근 백두산 기슭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 같아 변고가 우려된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에 정조는 “하늘의 이치는 측량하기 어렵다”면서도 지방 관리들에게 백성들을 안정시키도록 지시했습니다.

➡️ 백두산 지역에서 지진이나 화산 활동이 감지되었음을 시사하며, 조정이 이를 민심과 연결하여 신중하게 대응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 – 조선의 자연재해 대응 방식

📌 조선왕조실록 속 화산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점

✔️ 조선은 일본에서 발생한 화산 폭발을 자주 관측하고 기록함.
✔️ 백두산의 화산 활동 가능성도 주목하며 이를 국가적 사건으로 여김.
✔️ 자연재해를 하늘의 뜻과 연결하여 해석하는 경향이 강함.
✔️ 왕과 조정은 화산 활동에 대해 제사를 지내거나, 직접 사신을 보내 조사하는 등 대응 조치를 취함.

조선 시대 사람들은 자연현상을 단순한 지질학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나라의 운명과 연관된 중요한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과는 다르지만, 당시 사회와 정치가 자연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