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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5일 화요일

조선 시대 왕들의 피난 사례 정리

 

조선 시대 왕들의 피난 사례 정리

조선 시대에는 외적의 침입이나 전란으로 인해 왕이 수도를 떠나 피난한 사례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 (1592년)

💥 배경
1592년(선조 25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했어요. 일본군이 빠르게 한양으로 진격하자, 조선 조정은 제대로 된 방어를 하지 못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죠.

🚶 피난 경로

  • 한양 → 개성 → 평양 → 의주 (최종 목적지)

결과

  • 왕이 도망치면서 조선의 통치 체계가 마비되었고, 백성들은 왕실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불만을 품었어요.
  • 다만, 피난 중에도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명나라의 지원군이 오면서 전세가 조금씩 반전되었습니다.

2. 병자호란 때 인조의 남한산성 피신 (1636년)

💥 배경
1636년(인조 14년), 후금(청나라)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병자호란이 발생했어요. 청군이 빠르게 한양으로 진격하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죠.

🚶 피난 경로

  • 한양 → 남한산성

결과

  • 남한산성에서 47일 동안 버티며 항전했지만, 결국 식량 부족과 청군의 압박으로 항복할 수밖에 없었어요.
  •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무릎 꿇고 항복하는 치욕을 겪었고, 이후 조선은 청의 속국처럼 행동해야 했어요.

3. 정묘호란 때 인조의 강화도 피난 시도 (1627년)

💥 배경
1627년(인조 5년), 후금(청나라의 전신)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정묘호란이 발생했어요. 조선 조정은 급히 왕을 강화도로 피난시키려 했습니다.

🚶 피난 경로

  • 한양 → 강화도 (피난 시도했으나 미완)

결과

  • 후금이 조선을 크게 위협하지 않고 조약을 맺는 선에서 마무리되었어요.
  • 그러나 이후 병자호란(1636년)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4. 아관파천 -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피신 (1896년)

💥 배경
1895년, 일본 자객들이 경복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민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이 발생했어요. 이후 고종은 일본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쳤어요.

🚶 피난 경로

  • 경복궁 → 러시아 공사관 (1896년 2월)

결과

  •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서 머물렀던 이 사건을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 합니다.
  • 이후 조선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졌고, 일본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 정리 및 결론

조선 왕들은 외적의 위협을 받을 때 도성을 버리고 피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하지만 왕이 도망치면 조정과 백성들의 혼란이 가중되었고, 정국이 불안해지는 결과를 초래했어요. 결국, 이러한 피난들은 조선의 국력 약화와 외세의 간섭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