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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1일 금요일

📜 신미양요(辛未洋擾, 1871년) – 조선왕조실록 기록

 

📜 신미양요(辛未洋擾, 1871년) – 조선왕조실록 기록

1871년(고종 8년),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년)을 빌미로 조선을 침략했어요. 미국 함대는 강화도로 진격했으나, 조선군의 결사항전으로 철수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를 "양적(洋賊, 서양 도적)의 침입"으로 기록하고 있어요.


⚔ 신미양요의 주요 기록

1️⃣ 미국 함대의 침략 (1871년 6월)

📌 《고종실록》 8년 5월 17일(양력 6월 1일) 기록

"서양 오랑캐(洋夷)들이 군함 다섯 척을 이끌고 강화해협을 따라 들어왔다. 전함에는 대포가 장착되어 있었으며, 우리 수비군이 이들을 막아냈다."

👉 미국 함대(로저스 제독 지휘, 군함 5척, 병력 1,230명)가 강화도 초지진에 접근하여 조선군과 충돌


2️⃣ 강화도 전투 (1871년 6월)

📌 《고종실록》 8년 5월 21일(양력 6월 5일) 기록

"양적이 초지진(草芝鎭), 덕진진(德津鎭), 광성진(廣城鎭)을 차례로 공격하였다. 우리 군사는 끝까지 싸웠으며, 전사한 자가 많았다."

👉 미군이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하고, 마지막으로 광성진에서 결전

📌 《고종실록》 8년 5월 24일(양력 6월 8일) 기록

"어재연(魚在淵) 장군이 광성보에서 적을 맞아 싸우다 순절하였다. 적들이 성을 함락하고 약탈을 일삼았다."

👉 조선군 총지휘관 어재연 장군이 광성보 전투에서 전사
👉 미군이 광성보를 점령했으나 조선군의 끈질긴 저항에 철수 결정을 내림


3️⃣ 미국군 철수 (1871년 7월)

📌 《고종실록》 8년 6월 2일(양력 7월 16일) 기록

"양적이 더는 전진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우리 군사가 끝까지 지켜 싸웠으므로 결국 그들이 퇴각하였다."

👉 미국군이 더 이상의 공격을 포기하고 철수


⚔ 주요 전투 정리

1️⃣ 초지진 전투 – 미군의 첫 공격(조선군 패배)
2️⃣ 덕진진 전투 – 미군이 덕진진 함락
3️⃣ 광성보 전투 – 어재연 장군이 최후까지 저항하며 전사


📌 신미양요의 결과

조선군 피해

  • 약 350명 전사
  • 어재연 장군 포함 주요 지휘관 전사

미국군 피해

  • 전사 3명, 부상 10여 명

결과

  • 조선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미국군 철수
  • 이후 조선은 쇄국 정책 강화, 서양 세력과의 교류 차단

💡 신미양요의 역사적 의미

📌 쇄국 정책 강화 – 이후 조선은 더욱 강력하게 서양과의 교류를 막음
📌 미국과의 갈등 지속 –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강제 개항) 이전까지 미국과의 외교 관계 단절
📌 조선의 저항 정신 – 어재연 장군과 조선군의 항전은 후대에도 애국심의 상징으로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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