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도감에 선 푸른 눈의 조총수들
1654년, 하멜 일행의 북벌 군영 배속기
부제: 네덜란드 선원 36명의 한양 압송과 효종의 친견, 서양 총포술을 품은 조선의 군사 전략
기본 정보: 《효종실록》 5년(1654) 6월 11일 / 사건 ID: IR-0090
1. 창덕궁 편전에 엎드린 푸른 눈의 이방인들
1654년(효종 5) 6월 11일, 한양 창덕궁 편전. 붉은 머리칼에 푸른 눈을 가진 서양인 서른여섯 명이 조선 관복을 어색하게 걸쳐 입고 국왕 효종의 어전에 엎드려 있었다. 전년도인 1653년 8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선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타고 나가사키로 향하다 제주도 바위 절벽에 난파되어 살아남은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과 선원들이었다.
효종의 곁에는 27년 전 먼저 조선에 표류하여 귀화한 네덜란드인 무관 박연(벨테브레)이 통역관으로 서 있었다. 하멜 일행은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해달라며 눈물로 읍소했다. 그러나 효종의 눈빛은 단호했다. “조선의 국법은 외국인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너희는 오늘부터 과인의 친위 군영인 훈련도감의 병사가 되어 국방을 도우라!”
2. “훈련도감 포수로 삼아 급료를 주다”
북벌(北伐)을 국시로 내걸고 군비 확충에 사활을 걸고 있던 효종에게, 서양의 첨단 항해술과 화포 기술을 지닌 네덜란드 선원들은 놓칠 수 없는 귀중한 군사 자원이었다. 만약 이들을 돌려보냈다가는 조선의 북벌 준비와 서양인 억류 사실이 청나라에 누설될 위험이 컸고, 동시에 서양의 선진 화포술을 흡수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효종은 하멜 일행을 전원 국왕 직속의 정예 상비군 군영인 ‘훈련도감(訓鍊都監)’ 포수(조총병)로 정식 편입시켰다. 이들에게 매달 쌀과 포목 등 군인 급료를 지급하고, 국왕 행차 시 화려한 제복을 입고 왕을 호위하게 했다. 아울러 네덜란드식 화승총 조작법과 서양식 화포 주조 기술을 조선 장수들에게 전수하도록 지시했다.
3. 북벌론의 야망과 서양 군사 기술의 흡수
하멜 일행의 훈련도감 배속은 효종 대 북벌 프로젝트의 실용주의적 단면을 상징한다. 효종과 송시열 등은 서양인들을 억류하면서 그들이 지닌 포술과 조선술, 군사 지식을 북벌을 위한 군사력 증강에 철저히 활용하려 했다. 비록 하멜 일행에게는 13년간 낯선 이국땅에서 군역과 노역을 치러야 했던 기나긴 억류의 비극이었으나, 그들의 총포술 시연과 기술 전수는 조선군 화력 부대의 훈련 방식을 한 단계 정밀화하는 데 기여했다.
4. 13년의 억류 끝에 세계로 퍼진 ‘코레아’
하멜 일행은 효종 사후 전라도 강진, 여수 등으로 분산 이주하여 고단한 삶을 이어가다가, 1666년 8명이 목선을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극적인 탈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1668년 하멜이 펴낸 《하멜 표류기》는 조선이라는 은둔의 나라를 유럽 세계에 최초로 알린 불멸의 기록이 되었다. 실록에 박제된 1654년 하멜 일행의 훈련도감 포수 배속 기사는, 국가의 군사적 생존을 위해 이방인의 기술을 과감히 품었던 조선 왕실의 치열한 군사 전략과 동서양 문명이 부딪치며 빚어낸 드라마틱한 역사의 한 장면이다.
[사료를 펼쳐보면]
출전: 《효종대왕실록(孝宗實錄)》 권12, 효종 5년 6월 11일 계축(癸丑) 기사 맥락
원문 대목: 濟州漂도南蠻인等至京, 命配訓鍊都監, 月給米布, 令習火器, 衛從行幸。
국역문: 제주도에 표류해 당도한 남만인 등이 한양에 이르니, 명하여 훈련도감에 배속시키고 달마다 쌀과 베를 지급하며 화기를 익히고 행행을 호위하게 하였다.
[이 기록이 특별한 이유]
서양인 표류민의 국가 군사력 편입: 단순 억류나 구휼에 그치지 않고 중앙 정예 상비군인 훈련도감에 정식 배속시켜 급료를 주고 군역을 부과한 공식 행정 사료다.
북벌 정책의 실용주의: 청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서양식 화기 기술을 적극적으로 군영에 이식하려 했던 효종 대 군사 전략을 실증한다.
[조선의 시스템: 훈련도감 포수와 남만인(南蠻人)]
남만인(南蠻人): 조선 시대 네덜란드 등 서양인을 일컫던 호칭(남쪽 바다를 통해 온 오랑캐라는 뜻).
박연(벨테브레, Jan Jansz Weltevree): 1627년 표류해 귀화한 최초의 네덜란드인 무관으로 훈련도감에서 화포 제작을 담당하며 하멜 일행의 통역을 맡았다.
국가의 생존과 북벌의 야망을 위해 낯선 이방인의 기술까지 군영으로 끌어안았던 효종의 결단은, 동서양 문명이 엇갈리며 빚어낸 가장 드라마틱한 역사의 교차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