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호루의 비극과 국모 시해의 만행: 1895년 을미사변, 경복궁을 짓밟은 낭인들의 칼날
부제: 건청궁 녹원에 피어오른 불길, 한 나라의 궁궐 안방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국가 암살
기본 정보: 《고종실록》 32년(1895) 8월 20일 / 사건 ID: IR-0044
1. [새벽안개를 찢은 총성, 경복궁 북문으로 난입한 자객들]
1895년(고종 32) 음력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새벽 5시경, 어둠에 덮인 경복궁. 갑자기 광화문과 영추문 쪽에서 굉음과 함께 총성이 울려 퍼졌다.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지휘를 받는 일본 수비대 군인들과 칼을 찬 일본 낭인 자객들, 그리고 친일 조선인 훈련대 병력이 궁궐 담장을 넘어 난입한 것이었다.경복궁을 지키던 시위대 연대장 홍계훈(洪啓薰)과 궁내부 대신 이경직(李耕稙)이 칼을 막아서며 결사적으로 저항했으나, 낭인들의 흉도에 난자당해 처참하게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자객들은 핏자국이 낭자한 군홧발로 국왕과 왕비의 침전이 있던 경복궁 가장 깊은 곳, 건청궁(乾淸宮)으로 거침없이 쳐들어갔다.###
2. [실록에 기록된 옥호루의 참극: "황후의 처소에서 변괴가 일어나다"]
자객들은 장안당으로 난입해 고종의 곤룡포를 잡아채 찢고, 왕세자(순종)의 머리채를 흔들며 칼로 위협했다. 그리고 왕비의 침전인 옥호루(玉壺樓)로 들이닥쳤다.궁녀 옷으로 변복하고 있던 명성황후를 발견한 자객들은 황후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무자비하게 칼로 난자했다. 왕비는 비명 속에 숨을 거두었다.일본 낭인들의 만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황후의 시신을 건청궁 옆 녹원(녹산 숲)으로 끌고 가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석유를 뿌려 불태운 뒤, 타다 남은 유골을 향원정 연못과 산에 뿌려 유기했다.《고종실록》의 기록관은 온 인류를 경악케 한 을미사변(乙未事變)의 통한을 기록했다.*"새벽에 왜인들이 훈련대 군사와 함께 궁궐로 난입하여 건청궁에서 변을 일으키니, 옥호루에서 왕후의 행방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 《고종실록》 권33, 고종 32년 8월 20일 기사 맥락*###
3.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의 목격과 '여우사냥'의 진실]
이 야만적인 국가 테러는 당시 궁궐 시위대 교관이었던 러시아인 건축가 사바틴(Sabatine)과 미국인 다이(Dye) 장군에 의해 낱낱이 목격되었고, 외국 공사관을 통해 전 세계에 폭로되었다.일본은 청일전쟁 이후 조선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의 간섭을 배제하려 하자(인아거일), 명성황후를 제거하기 위해 암호명 '여우사냥(狐狩り)'이라는 치밀한 국가 주도 암살 작전을 감행했던 것이다.사건 후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자 일본 정부는 미우라 공사 등 48명을 히로시마 법정에 세웠으나, "살해를 모의한 것은 사실이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궤변으로 전원 무죄 방면하며 제국주의의 파렴치한 민낯을 드러냈다.###
4. [기록이 남긴 통찰: 국권이 무너진 궁궐에 남겨진 피눈물]
을미사변은 한 나라의 주권과 군사력이 무너졌을 때, 왕실의 가장 지엄한 침전조차 침략자의 도살장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 조선 왕조 500년 역사상 가장 치욕스럽고 가슴 아픈 참극이었다.실록에 새겨진 1895년 옥호루의 피비린내는,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기 위해 온 민족이 을미의병의 깃발을 들고 떨쳐 일어나게 만든 거대한 저항의 불씨가 되었다.###
[상세 주석 및 사료 해설 (Notes)]
1. [사료 원문 및 출처]
- 출전:** 《고종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범승천체도위덕융공지신희문헌무경헌순효태황제실록(高宗實錄)》 권33, 고종 32년 8월 20일 무술(戊戌) 기사 맥락
원문 맥락: 黎明, 倭兵及訓練隊突入宮闕, 犯乾淸宮。 宮內府大臣李耕稙·洪啓薰死之, 坤殿遭害。
국역문 맥락: "새벽에 왜병과 훈련대가 궁궐로 돌입하여 건청궁을 범하였다. 궁내부 대신 이경직과 홍계훈이 전사하고, 곤전(명성황후)께서 변을 당하셨다."#### **
2. [용어 및 제도 해설]
- 을미사변(乙未事變, 1895년 10월 8일):**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 군인과 낭인들이 경복궁을 침범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소각한 사건.
건청궁(乾淸宮)과 옥호루(玉壺樓): 1873년 고종이 경복궁 북쪽 끝에 사비로 지은 전각으로, 옥호루는 명성황후가 거처하던 건청궁 곤녕합의 누각.
삼국간섭(1895): 러시아·독일·프랑스가 일본을 압박하여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빼앗은 랴오둥(요동)반도를 청나라에 반환하게 한 사건으로, 조선의 친러 정책의 배경이 되었다.#### **
3. [인물 및 역사적 배경]
- 미우라 고로(1847~1926):** 육군 중장 출신의 주조선 일본 공사로, 을미사변의 총기획 및 지휘자.
홍계훈과 이경직: 낭인들의 칼을 온몸으로 막아서며 왕과 왕비를 지키다 장렬히 순국한 충신들.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A. S. Sabatine): 경복궁 내에 머물며 을미사변 당시 낭인들의 살육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증언서를 작성한 러시아인 건축가.#### **
4. [교차 사료 및 관련 연구]
- 사바틴의 목격 보고서 및 러시아 외교 문서:** 1895년 10월 8일 새벽 건청궁 침입 및 왕비 수색 과정의 1차 기록.
우치다 사다쓰치 일본 영사의 보고서(에조 보고서): 시해 직후 시신 훼손 및 소각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일본 외무성 극비 사료.